우기(雨期)가 시작됐다.
공기는 한껏 촉촉해지고 도시를 가득 메웠던 미세한 먼지들은 일시에 사라졌다.
앞으로 한달여. 벌써부터 '지루한 장마'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까닭없이 기운이 나고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장마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극동지방에서만 나타나는 기상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나는 장마. 이같은 장맛비에 대한 3국의 이름은 자못 낭만적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숲에 비가 뿌리는 형상의 임(霖)자를 붙여서 임우(霖雨)라고도 했고, 쌓이는 비라는 뜻에서 적우(積雨), 오래도록 내리는 비라는 의미에서 구우(久雨) 등 다채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또한 중국에선 매실이 익어갈 무렵에 오는 비라는 뜻에서 메이위(梅雨)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읽는 방법에 따라 바이우(梅雨) 또는 츠유(梅雨)라고도 한다.
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의 하나로는 아마도 전라도 해남의 윤선도 선생 고택인 녹우당(綠雨堂)이 아닌가 싶다.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아~ 하며 비가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참으로 여유롭고 그윽한 운치가 넘친다.
비를 다룬 문학작품 중 서울소녀와 시골소년의 순진무구한 사랑을 그린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한국인 누구나의 가슴에 그리움의 이름으로 녹아있다.
반면 유흥렬의 소설 '장마'는 전쟁의 회오리 속에 내던져진 한 가족의 비극을 시종 어두운 톤으로 그려내고 있다.
비는 야누스적이다.
한 얼굴은 낭만적이며 부드러운 얼굴, 또하나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얼굴이다.
전자는 사람의 마음뿌리를 세미하게 건드려 거친 성정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만 후자는 마구 짓밟고 뭉개고 휩쓸어 가버린다.
지난 여름의 태풍 루사가 몰고 왔던 엄청난 비는 아직도 곳곳에 상채기를 남기고 있다.
이제 곧 낯선 이름의 태풍들이 차례차례 몰려올 것이다.
하늘을 찢는 뇌성과 번개, 그리고 폭우는 우리 일상을, 삶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건망증 심한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우주의 한낱 점(點)임을, 그래서 대자연에 겸손해야할 존재임을 깨닫게도 할 것이다.
지루한 장맛비가 있기에 땅 속 깊은 곳의 샘들은 채워지고, 대지는 생명의 빛으로 반짝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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