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이 3주년을 맞은 이때 대북송금사건 특별검사의 수사기간 연장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짚어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전 북한 외교관 출신 고영환씨가 소개한 북한의 '1991년도 외교공세계획'에 따르면, '북한 사회주의 제도를 말살하려는 미국, 일본, 남조선의 연합을 분쇄하고, 미 일 남조선 호상간의 모순과 알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미 일 남조선 사이를 벌려놓고, 쐐기를 치면서 남조선을 역포위하게 만드는 것'이 북한 대외정책의 총체적 목표였다.
이 목표가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변했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대북송금사건에 대해 가장 염려해야 되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내는데 필요한 미국과 일본의 협력에 이 사건이 미친 부정적 파급효과다.
6·15선언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그간 김대중 정부나 학계와 언론계 전문가들이 많이 언급해 왔다.
그런데 이 선언과 그 후속 조치들이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현재까지 없다.
그러나 다음 문제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논의가 있어야 된다.
먼저, '신광수 사건'이다.
북한 공작원 신광수는 일본인을 납치하여 북한으로 보낸 뒤에 그의 신분증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간첩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런데 6·15선언 직후에 미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보내졌다.
그 과정에서 일본정부는, 당시까지 북한이 부정하고 있던 일본인 납치사건의 산 증인이 신광수이므로 그를 북한에 보내지 말고 일본 수사기관의 신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신광수를 북한에 돌려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일본정부의 진지한 협력을 요구한다면 파렴치한 일이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전횡을 부리는 것에 우리가 동조해서는 안되지만,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억제는 우리로서도 협력해야 될 사안이다.
북한이 '민족공조' 운운한다고 대량살상무기를 한국에 대해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한국의 공지전투교리(空地戰鬪敎理)를 위협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현안을 북한과 미국간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일 수 있는 현금을 비밀리에 북한에 송금한 것은 우매함과 무책임함의 전형이다.
북한과 남북한관계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통일된 한국사회가 제도적 다원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면, 현재의 북한은 변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일의 독재권력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들은 자신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자금을 필요로 했다.
특히, 독재권력을 유지하는데 근간이 되는 비밀경찰과 정보조직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현금이 소요된다.
여관비도 없어 활동할 수 없었던 북한·중국 국경지역 북한공안요원들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현금지원으로 생명력을 얻었고, 탈북자 체포를 위해 중국공안요원들에게 포상금도 지급한다면, 누구와 무엇을 위한 대북 지원이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6·15선언의 가장 큰 실책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사장시켜 버린 것이다.
이 선언은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남북한관계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
선언의 내용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일부분을 극히 추상적으로 다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기본합의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으며, 이 선언과 기본합의서간의 관계에 대해 남북한간에 합의된 바도 없다.
그리고 기본합의서 이행기구로 분과위원회와 공동위원회가 있는데도 6·15선언 이행기구를 다시 만들었다.
남북한관계처럼 불확실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합의들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가야 되는데 이를 어긴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의 가장 큰 실책이다.
허만호(경북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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