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클릭-스크린쿼터 논란

입력 2003-06-23 15:33:22

스크린쿼터 유지냐, 폐지(또는 축소)냐.

극장에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을 부과하는 스크린쿼터 제도에 대한 논란이 4년만에 다시 불거졌다.

축소,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스크린쿼터가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에 최대 걸림돌"이라며 "시장점유율 50%대를 육박, 자생력을 갖춘 만큼 국가 경제를 위해 이번 만큼은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BIT 자체가 잘못됐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 자생을 위한 기본적인 방어막"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스크린쿼터는 1년 365일의 40%에 해당하는 146일. 1966년 시작돼 현재까지 가동되고 있다.

명절 한국영화 상영시 경감하는 등 각종 경감 조치로 현재 통용되는 것은 106일이다.

지난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48%에 이른다.

또 국내 영화시장의 매출이 1999년 3천억원에서 지난해에는 6천억원이 될 정도로 3년만에 2배 가량 규모가 커졌다.

이제 스크린쿼터의 막을 걷어도 되지 않느냐는 근거다.

▨영화계의 입장

그러나 영화계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 94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체결 되기 전 멕시코에선 연간 100여편이 제작되고, 자국영화 좌석 점유율도 40%를 유지했다.

그러나 NAFTA가 체결된 이후 98년의 경우 단 세 편만이 제작됐다.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현재의 자생력은 스크린쿼터의 보호막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스크린쿼터가 무너지면 미국 영화의 덤핑 등으로 한국영화계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했다.

극장용 한국영화는 연간 60편 정도가 제작되고 외국영화는 약 500편이 수입된다.

영화만 좋으면 스크린쿼터가 없어도 극장에서 상영될 것 아니냐는 것도 폐지를 주장하는 측의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계측에서는 "창작의 질과 관계없는 배급망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급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98년 '여고괴담'은 할리우드영화 '고질라'에 비해 2배나 더 관객이 몰렸다.

그러나 '여고괴담'의 간판이 내리고, '고질라'가 걸렸다.

"할리우드 영화 배급사가 차후 흥행 작품을 무기로 우격다짐으로 개봉을 확대했다"며 당시 반대가 심했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선생 김봉두'나 '동갑내기 과외하기' 처럼 흥행작은 예외지만, '질투는 나의 힘' 등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1억달러(한화 약 1천200억원)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상업 영화만 만들어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스크린쿼터는 1966년부터 시행됐지만 1994년부터 실제적으로 운용됐다.

스크린쿼터 감시단이 발족한 것이다.

이후 한국영화가 부흥기를 맞았다.

이에 대한 분석도 분분하다.

조태일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은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 늘어난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를 없애는 대신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만 늘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스크린쿼터를 강화하면서 국제경쟁력이 생겼고, 관객도 많이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46일에서 73일로 줄이자는 것에서도 단 하루라도 줄이면 협상의 대상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프랑스와 한국뿐이다.

영화계에서는 미국의 패권주의 세계를 지배하는 증거라며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해 자국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스크린쿼터를 고집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배타적인 이미지를 사고 있다며 자유무역의 대세에서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몇몇 영화제작사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1996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높아졌지만 제작편수는 15% 가량 줄었다.

다시 말하면 '대박(흥행 영화) 영화' 몇 편이 점유율을 다 차지한 것이다.

이번 논쟁의 가장 큰 쟁점은 '국익'이란 점이다.

▨정부의 입장

스크린쿼터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미국으로부터 실익을 찾자는 것이다.

한미투자협정(BIT)이 체결되면 40억달러 투자유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크린쿼터를 양보하지 않으면 연간 330억 달러에 이르는 대미수출이 타격 받을 것이라고 한다.

소탐대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계에서는 BIT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BIT는 1994년 미국이 제안했고,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보였던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투자가 절실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세계 4위 수준. 따라서 공장을 짓는 직접 투자가 아니라 주식 등 투기성 자본으로 몰릴 미국의 투자에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체결 국가 중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가 한 곳도 없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지역학부교수는 "미국과 BIT를 체결한 국가는 몽골과 동구권 국가 등 비 안정 국가"라며 "미국과 BIT를 체결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경제계의 폐지, 축소 주장에도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이창동 장관은 지난 11일 "장관직을 그만 두는 한이 있더라도 스크린쿼터는 절대 손 댈수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대미무역이 한국 무역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스크린쿼터 폐지, 축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논리냐, 문화논리냐는 문제는 경제적 실익과 문화적 가치라는 상이한 키워드처럼 첨예한 교착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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