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업사태 맞은 권기홍 노동부 장관

입력 2003-06-21 11:04:10

-한나라당이 권장관을 손봐야 할 장관중 하나로 꼽는다.

△직접 그런 얘기는 못들어봤다. 국회에서는 다들 점잖다고 한다. 설마 손 보겠나.의원들과 개인적으로는 대화가 잘 된다.

-친노동자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취임사에서 직원들에게 "여러분은 노동부 공무원이지 경제부처 공무원이 아니다. 노동부 공무원이라고 해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노동부 공무원은 정부내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런 지적을 받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친노조적', 심지어는 '노조의 대변인'이라는 얘기까지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다. 환경부가 정부내에서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야지 개발문제를 얘기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모든 정부 부처가 같은 입장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것을 '친노동자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입장이다.

-조흥은행이 전격 파업에 돌입했다. 사태해결방법은 있나.

△난제다. 뽀족한 방법이 없다. 노동부는 정부내 토론과정에서 노동자 입장에 맞춰야 하지만 무조건 노동자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다. 정부의 일괄매각 논리에 하자가 있다면 재논의를 해야 겠지만 오래전부터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 있었다. 지금 노조가 순간적으로 감성적으로 흐르면서 퇴로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실리라고 할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은 절차상으로도 불법이고 목적도 불법이다.

-노동계가 과격하게 나오는 데는 시끄러우면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깔린 것 같다.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힘에 밀려 안들어 줄 것을 들어주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 집행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관련자만 9명이 구속됐다. 화물연대 파업은 자영업자들, 이를 테면 수퍼마켓 주인들이 문닫고 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파급효과가 크지만 파업을 한다고 무조건 잡아들일 수는 없다. 9명 정도의 구속은 적절한 법적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철도 민영화 철회 역시 정권인수위에서 결정된 것이다. 다만 발표를 미루다가 노조가 파업한다니까 부랴부랴 발표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떼를 쓰니까 민영화를 철회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불법파업이라도 정당한 주장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도 "불법이라도 정당하면 수용해야 한다"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불법도 수용해야" 식으로 변질되더라. 이후 "불법은 불법대로 처리하고 주장은 주장대로 귀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이번에는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다. 지금 파업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과거에도 분규는 있어왔다. 현재 분규건수는 지난해의 절반도 안되고 근로손실일수도 4분의 1이 안된다. 물론 조흥은행이나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우려스럽다. 그러나 파업한다고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안일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세상이 무너질 듯한 불안감을 야기시키는 것은 문제이다.

-두산중공업 파업사태를 해결하면서 노동부장관이 노조편을 들고 기업을 윽박질렀다는 비판이 있는데.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두산중공업 경영진들에게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손배소와 가압류가 유일한 무기"라고 하길래 "조합쪽은 산별노조인데 재크나이프처럼 무기같지도 않은 무기로 어떻게 대적하려느냐"고 설득했다. 이를 사용자들이 압력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의 한 방안이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장관이 사용자를 '재크나이프 들고 설치는 불량배'라고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두산중공업 사태는 일반적인 노사분규가 아니었다. 사람이 분신자살한 사건이다. 자율적인 해결은 도저히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경찰력의 투입 뿐이었다. 경찰력을 동원하면 해결은 된다. 그러나 그 이후 노사관계는 성숙을 기대하기 힘들다.

-노사관계 불안이나 고용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한다.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파업하지 말라는 식의 대책은 안된다. 주체적으로 새로운 노사문화를 형성해가는 통로를 만들어줘야지 일방적으로 내몬다고 되겠는가.

노동시장 유연성도 같다. 해고의 자유는 결과적으로 보장되어야지 법대로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엄청난 정반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려면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체 노동시장의 안정없이 개별 노동시장이 유연해질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도 다 그렇게 되어 있다. 미국은 기업이나 민간 차원에서 전직훈련이 보장돼 있고 유럽은 국가차원에서 보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민간에도 국가에도 그런 장치는 없다.

-문제가 생겨야 일을 한다는 것이 공무원 사회에 대한 일반의 평가인데 노동부 공무원은 어떤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도 있고 열정도 있더라. 공무원도 천차만별인데 공무원 때문에 일 못하겠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2%에 불과하다.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87%의 노동자들에대한 대책은 있나.

△어렵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가 어려운지 사용자가 더 어려운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들 사업장에 노동관계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사용자는 모두 쇠고랑을 차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경제 파이가 커져야 된다.

-노동부 장관 재임중 꼭 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 커서 얘기를 잘 못하겠다. 우리나라는 고교졸업자의 88%가 대학을 가는데 이런 사회는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학진학에 인력관리가 치중되는 나라치고 이만큼 사는 것은 기적이다. 노동부가 앞장서서 바꾸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직업교육 수료생들이 당당해 질 수 있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내년 총선 출마설이 있는데.

△내 선거는 하고 싶지 않다. 선거에 적성이 없는 것 같다.(대선당시 대구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지 않느냐고 하자)그 때 그런 일을 했으니 당연히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겠나. 그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웬만해선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선다고 대구가 바뀌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구는 대구시민들이 바꿔야 한다. 좀 더 오픈했으면 좋겠다. 대구는 대도시치곤 다원사회가 아니고 익명성이 없는 도시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으나 앞으로는 단점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해외투자시 합의를 포함한 경영참여 요구 등 노동계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정당한 요구의 한계는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경영참여 문제는 노사가 합의할 경우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정도에 따라서 노조가 요구할 수 있고 이를 들어주는 것이 경영효율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투자 등 경영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쟁의에 들어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업에 손실을 줄 뿐아니라 노조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이런 요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 만으로는 안된다.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와야 한다.

-노동부 노조설립은 어떻게 됐나.

△없었던 일로 됐다. 이달말 공무원 노조법의 입법예고를 앞두고 노동부가 법외 노조를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명분도 없고, 공무원 노조의 장기적인 발전에도 좋지 않다. 그러나 윽박지른 것은 없다(웃음)

-공무원 노조에 대해 국민은 불안하게 생각한다.

△처음은 다 불안하게 본다. 중요한 것은 톨레랑스(관용)이다. 그런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외국에도 노동부가 있나.

△많이 없어졌다. 독일은 없어졌고 영국은 교육부처와 통합됐다. 우리도 노사관계가 성숙되면 없어져야 할지 모른다. 노동부의 본래 할 일은 인적자원관리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노동부의 인적자원관리 업무를 재경부에 둬도 된다. 우리의 경제정책은 자본관리만 하고 인적관리는 하지 않았다.

대담=서영관 정치2부장

정리=정경훈 차장, 서명수 기자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전형적인 학자의 풍모다. 학교나 지역사회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렇다고 백면서생은 아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여한 대구사회연구소장을 지냈으며 96년과 2000년 영남대 총장 선거에도 두 번이나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경력도 갖고 있다. 또 지난 대선 때는 민주당 대구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불모지 대구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인연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를 맡아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다듬었고 노동부장관도 됐다.

당시 그는 노동부와 함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설이 나돌았다. 그의 전공은 노동경제학이다. 복지부와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권 장관은 1급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30)이 있다. 부인 서정희(55)씨와 함께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약 200명의 장애인들이 보호받고 있는 '더불어 복지재단'이라는 장애인 보호시설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서씨가 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권 장관의 아들은 정작 이 시설에 수용할 수가 없다. 연고자나 가족이 있으면 수용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서씨는 아침마다 휠체어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아들과 함께 재단에 출근한다.

서씨의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권 장관은 주중에는 홀아비 신세다. 노동부에서 전세로 얻어준 관사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지만 두 사람은 주말에 서씨가 빨래도 하고 밑반찬도 전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겨우 만난다. 그러니 평일 아침은 부인이 가져다 놓은 찰떡과 커피로 대신한다.

동료 교수들은 그를 학자답지 않은 결단력과 리더십.추진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소신이 너무 강해 고집불통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인 서씨도 남편을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 권기홍은 마음이 따뜻하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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