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대구사람 박홍규 영남대 교수

입력 2003-06-17 15:29:45

영남대 법대 박홍규 교수(51)는 토박이 대구 사람이다.

구미에서 태어나 경북고(51회)와 영남대를 졸업한 뒤 창원대 교수 시절과 일본 유학을 빼고는 대구를 별로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대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보수'라는 지역 정서와는 상반된 '사상'을 갖고 있으며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했다는 'TK 자존심'에 대해서는 '반시대적 정신'이라고 못박는다.

따라서 그는 고향인 대구에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왔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전국구 스타'다.

특히 위기라는 인문학에 있어서는 서구 중심, 사대주의적 학풍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전사'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4일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담아 '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 조지오웰'을 펴낸 박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달말 한국 인문학의 가벼움을 비판하는 또다른 책 '카프카'를 출판할 예정이다.

박 교수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저술한 책을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지난 19년 동안 박 교수는 40여권이 넘는 책을 냈다.

다작 능력도 놀랍지만 그가 펴낸 책 제목을 죽 읽어내려가면 혼란(?)을 느끼게 된다.

'까뮈를 위한 변명' '자유인 루쉰'에서부터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고야' '오리엔탈리즘' 등. 인문학과 예술, 철학과 법학을 오가며 저술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책 내용도 당연시 여겨왔던 '인식의 틀'을 한숨에 깨뜨리는 깊이를 갖고 있다.

전공자도 아닌 법대 교수가, 그리고 지방에서 과연 가능할까.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상식에 기초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또 그는 "당연히 알려져야 하지만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과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책을 쓴다"고 했다.

자칫 '지식인의 오만'으로도 들릴 수 있지만 그의 신간은 나올 때마다 식자층의 환호를 받고 있으며 이제 '박홍규 마니아'가 서점가에 자리잡았을 정도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시스템을 비판한 '이반 일리히'의 최초 소개자이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을 하나의 세계로 생각하는 서구인의 몰이해를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처음 번역했다.

또 한국 인문학의 '천박함'을 바로잡기 위해 카뮈와 루쉰, 고흐와 고야에 대한 책을 펴냈다.

박 교수는 카뮈를 예로 들며 '기초가 허약한 인문학'을 꼬집었다, "그동안 불문학자들은 카뮈에 대해 맹목적으로 찬양해 왔다"는 그는 "고흐는 귀를 자른 미치광이 화가로, 모차르트는 연예광으로, 베토벤은 귓병에 걸린 음악 천재쯤으로 소개되고 이것이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질타했다.

박 교수는 "한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는 그 시대의 아픔과 시대 정신을 함께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적 사대주의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루쉰은 오히려 민족주의를 비판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유인 루쉰'을 냈으며 광기의 화가가 아니라 노동자를 사랑했던 아나키스트였던 고흐를 알리기 위해 '내친구 빈센트'를 펴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 '법은 무죄인가'라는 법학서 또한 상식에 기초한 것이라고 했다.

국가보안법과 낙태 금지, 호주제도와 사형제 등 국적 불명의 학설을 동원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법을 만들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 주제가 다르고 분야도 다르지만 박 교수가 낸 책의 밑바탕에는 한가지 공통된 '맥'이 흐른다.

바로 그가 강조하는 '아나키즘'.

아나키즘학회 회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역설적으로 조선 말 세도 정치와 군사정권의 발판이 됐던 지역이 한국 아나키즘의 발원지고 그 뿌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나키즘은 또다른 선비 정신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게 대구와 대구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밀라노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대구 사회를 표현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밀라노의 패션 기술이 아니라 밀라노의 정신을 배워야 하지만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프랑스 사람 스탈당이 미치도록 사랑했던 '밀라노'는 로마에 맞서 끊임없이 정치적 독립과 자유로움을 추구해 왔다"며 "그들의 독립, 자유, 자치의 정신이 패션의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역은 실체도 없는 영남권력이란 환상을 좇아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심리적 자부심과 정권을 잃었다는 허탈감에 젖어 30년이란 세월을 보내왔다"고 했다.

이의 부작용으로 꽉 막힌 폐쇄성 속에서 살아왔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는 자치와 자유, 자연을 강조하는 분권 운동이 활성화된다면 대구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것이냐는 질문에 "이제 읽히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뭔가 남을 수 있는 것을 쓰고 싶은 욕구도 있다"고 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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