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업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기 쉬우나 첨단 자동화설비로 생산하는 트랙터는 고급승용차만큼이나 가격이 비싼 편이죠".
10일 달성산업단지내 대동공업〈주〉(대표이사 한재형) 생산현장엔 마치 휴일인 듯 드문드문 근로자들이 컴퓨터 제어기를 들여다보며 작업에 한창이다.
예년 같으면 농기계 비수기에 접어들었지만 최근 미국, 유럽 등지의 트랙터 주문이 잇따라 생산되자마자 수출길에 오르게 된다.
산업용 로봇이나 부품 자동이동차량(AGV)을 이용한 엔진조립 등 94년부터 시작된 설비자동화로 인력이 한창때 2천여명의 30%선으로 줄어들었다.
엔진조립 공장의 경우 작업공정의 80%가 자동화돼 16명의 인력이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엔진 헤드, 실린더 블록 가공공장도 거의 전 공정의 자동화로 각각 4명이 맡고 있다.
트랙터 생산공장도 거대한 놀이공원시설처럼 높다란 천장 전체가 자동화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이같은 생산설비 자동화가 창립 56주년을 맞은 대공공업의 도약 원동력이다.
1947년 진주에서 자본금 300만원으로 '대동공업사'를 설립, 출발한 대동공업은 당시 송풍기, 탈곡기와 같은 소형 농기구를 생산하는 철공소에 불과했으나 이후 석유·디젤 발동기 등을 생산함으로써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63년엔 국산 경운기를 생산해 농촌에서 소 대신 논밭을 일구는 '철우(鐵牛)시대'를 열어나가게 된다.
농업 기계화시대를 연 경운기의 히트로 자신감을 얻은 대동은 연이어 선박용 엔진, 공랭엔진 등을 개발하는 한편 1968년 트랙터 사업에 진출, 생산함으로써 오늘날 종합형 농기계 전문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1971년 콤바인, 1973년 이앙기, 1977년 바인더 등을 잇따라 선보여 국내 농기계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대동공업이 끊임없이 새 농기계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주인 고 김삼만 전 회장의 기술경영에서 비롯됐다.
김 전 회장은 1962년 '자동차공업 육성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자동차사업 진출을 제안했을때 농기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생산하겠다며 한우물 파기에 주력했다.
2대 김상수 회장도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 1997년 창녕에 200여억원을 들여 첨단 종합 농기계 연구소를 설립했다.
전직원의 10%에 달하는 100여명의 연구원들이 차세대 기술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대동공업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R&D 투자강화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대동공업 창고나 앞마당엔 일렬로 늘어선 트랙터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지서 주문이 급증, 출하된 뒤 바로 수출용 컨테이너로 옮겨진다.
첨단 자동생산라인 증설을 계획하고 있는 대동공업이 세계속 농기계 메이저업체로 도약할 날도 그리 멀지않은 것 같다.
민병곤기자 min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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