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온 '깐수'정수일 교수

입력 2003-06-09 15:36:47

"수감생활 4년 책쓰기 전념"

다섯 차례의 국적 변경과 예순이 넘은 나이의 징역살이. '국보급 학자'라기보다는 위장간첩 '깐수'로 더 잘 알려진 정수일(69) 교수.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문명'과 '이슬람', '역사'란 단어가 나올때면 그의 눈은 마치 꿈을 꾸는 10대 소녀처럼 빛을 발했다.

간첩죄로 4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친뒤 지난달 15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정 교수를 7일 만났다.

정 교수는 이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이슬람과 한국의 만남' 특강을 위해 대구를 찾은 길이었다.

그의 학문 세계를 묻기에 앞서 '개인 깐수'에 대한 질문을 먼저 했다.

그는 "52년 북경대학 동방학부에 들어간 것이 문명사 연구의 연이 됐다"고 짧게 이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천재 학자'다.

연변에서 태어난 정 교수는 56년 수재들만 뽑는 북경대학을 수석 졸업했으며 중국 국비장학생 1호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아랍어와 위구르어, 몽골어 등 무려 12개 고대 언어에 정통하며 평양외국어 대학 동방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또 중동에서 외교관과 교수로, 남파 공작원으로 한국에 온 뒤 지난 97년 간첩죄로 체포될 때까지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지낸 특별한 '삶'을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 레바논과 필리핀 국적을 차례로 가졌으며 지난 15일 마침내 '부평초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정 교수는 국적을 받는날 "정말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체포 당시 필리핀 국적을 갖고 있었기에 수감 대신 추방을 택할 수 있었지만 '한국인을 고집'하며 '사형'을 구형 받았기 때문이다.

간첩활동을 위한 '깐수'란 이름도 아랍고전에 나오는 신라의 한 지명일 정도로 그의 조국애는 특별하다.

지금까지 정 교수가 펴낸 책은 '신라.서역 교류사'와 '고대문명교류사', '이븐 바투타 여행기' 등 10여편이 넘는다.

모두 문명교류사를 새롭게 정립한 독보적인 저술들. 그러나 그는 방대한 책의 대부분을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질곡'에 빠져 있을때 완성했다.

'동방교역사'는 간첩죄로 체포돼 조사를 받는 동안 담당 검사의 배려로 완성했으며 수감 생활 동안은 4권짜리 '이븐 바투다 여행기'와 '동방교역사전', '씰크로드학' 등을 정리해 냈다.

특히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보다 앞서 만들어진 이슬람의 전설적 여행가 이븐바투타의 동방여행록은 그가 세계 최초로 초역해 낸 것으로 중세 동방 문화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다.

그는 수감 시절 동안 화장지를 풀로 붙여 노트로 400여권에 이르는 분량의 글을 정리했다.

정 교수는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이 큰 몫을 했다"고 했다.

간첩죄로 체포될 당시까지 남편의 존재를 몰랐던 부인은 수감기간 동안 각종 자료를 반입하고 원고를 정리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 기간을 "학자의 입장에서는 행운일 수도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볼펜과 종이가 있었고 식사 시간 10여분과 운동 시간 1시간을 빼고는 하루 10여시간 이상을 책쓰기에 몰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정 교수는 "현재 '중세문명 교류사'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역주를 쓰고 있다"며 "문명 교류사 연구는 인류 갈등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지난 5천년간 인류는 전쟁과 종교, 그리고 주의.주장으로 갈등 해결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으며 부작용으로 종말론까지 등장했다"며 "문명사적으로 인류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갈등 치유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또 지금까지의 문명사는 서구 위주의 편협되고 왜곡된 역사관이 전부였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 그는 "한국만 해도 서구보다 훨씬 앞선 신라때부터 아랍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나 우리의 세계사관은 하멜표류기와 은둔의 나라로 대표되는 서구 의존에만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점에서 "이슬람 문명 또한 터무니 없는 비난과 왜곡으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근세들어 학자들은 문명간 갈등을 '문화충돌론'과 '문화공존론'이란 두가지 방법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이제는 '문명교류론'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유기체적인 문명'을 정형화된 틀로 만들어 놓다 보니 잘못된 학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관용과 자비를 공통으로 하는 불교와 이슬람의 특징을 알지 못하면 아시아와 아랍권의 관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좋은 예"라고 했다.

따라서 정 교수가 매달리고 있는 '문명교류사'는 인류 5천년 역사를 여러 문명간 교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세계사적인 작업이다.

앞으로의 학문적 과제를 묻는 질문에 "나이가 드니 조급한 마음이 자꾸 든다"는 그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난 지금은 새로운 문명담론이 필요한 시대"라고 답을 대신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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