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일은 노무현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날이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27일 대구에서 첫 국정토론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획기적인 지방 분권을 약속하면서도 '지방 간의 경쟁'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중앙정부에 막연히 요구만 하지 말고 실현성 높은 비전과 프로젝트를 만들라며 좋은 발전계획을 제시하는 지역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했다.
취임 초기 대구에서 가진 토론회에서 대구U대회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대한 지원약속이 그 실례이다.
그후 넉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지난 2월18일 지하철참사라는 대재앙을 맞은 대구는 행정력 마비와 공권력 추락,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대구.경북에 가진 체감 관심도는 일단 역대 정권보다는 높다고 느껴진다.
지하철참사 이후 대구를 특별재난지구로 신속히 지정하고 중앙특별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지역 민심을 끌어안으려는 속내도 내비쳤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후련하게 풀리는 것이 없는 답답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양성자가속기 건설, 포스트밀라노프로젝트, 한국지하철공사 설립, 포항영일만 신항 건설, 동해안 국도확장, 동해중부선 철도 부설사업, 경북북부권 개발촉진지구 사업 등 주요 지역 현안이 모두 표류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사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 논란과 '노건평 의혹' 등 잇따른 악재에 발목이 잡히면서 지방분권 개혁은 선언만 있었을 뿐 정작 '시동'이 걸릴 낌새조차 없다.
민영창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재정이양 등에 대한 약속만 있었지 이뤄진 것이 없다"면서 "정부 각 부처는 개혁적 분권정책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지방분권과 관련된 이렇다 할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중앙정부 관료들의 교묘한 반대와 부처 이기주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중앙정부 관료와 수도권의 기득권 층이 "지방이 지방자치를 할 역량이 과연 있느냐"는 논리를 내세우며 지방분권을 위한 실질적인 재정.권한 이양을 교묘하게 방해하고 고비 때마다 딴지를 걸고 있다는 것. 중앙부처 관료들의 이같은 방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분권 추진도 역대 정권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호에 그칠 수도 있다.
이진훈 대구시 경제산업국장은 "지방분권의 핵심은 재정분권"이라며 "돈을 지방자치단체에 포괄해 넘겨주는 방식으로 지방을 지원하면 지방분권은 저절로 된다"고 말했다.
정상수 경북도 기획관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방분권이다, 개혁이다, 논의만 무성했지 달라진게 무엇이냐"며 반문하고 "연초부터 현안사업 설명이나 예산지원 요청을 위해 중앙부처 실무자를 찾아 로비를 벌여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지방분권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가져오는 프로젝트 가운데 잘 된 것이 있으면 해주겠다는 참여정부의 방침은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지만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뜻은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특정 지방을 지원하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중앙부처의 관료들에게는 '칼자루'를 자신들이 여전히 쥐고 있겠다는 의미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백승홍 의원은 "과거 정권의 특정 지역에 대한 집중적 특혜로 지방간 우열이 극단적으로 벌어진 상태에서 지방간에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대구의 경우 지방간 경쟁은 곧 도산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대구와 경북의 대응 자세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지방언론.시민사회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발전을 위한 핵심적 프로젝트를 구성할 것을 노 대통령이 주문했지만, 지금까지 대구.경북지역은 전혀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의원도 "양성자가속기 등의 사례에서 보듯 '떡줄 사람'(중앙정부)의 생각은 다른데 유치가 다 된 것처럼 발표해 시민들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주고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높였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것은 지역과 중앙정부간의 '라인' 단절을 극명히 보여준 한 단면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구시는 정무부시장에 산림청장을 지낸 김범일씨를 임용했다.
총무처와 행정자치부 등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한 그에게 대정부 및 중장기 경제정책 발굴 업무를 맡겨 단절된 중앙부처와의 라인을 복원하겠다는 포석이다.
대구시 한 고위공무원은 "민선자치 이후 기업유치 등을 위해 정무부시장을 경제계 출신 인사로 기용해 봤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선이었다"면서 "중앙정부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며 기업유치 또한 정부 채널을 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경북지역 기관단체장 25명으로 구성된 대구경북혁신위원회가 지난 3월 발족했지만, 가시적인 지역발전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구시와 경북도는 전문가.교수.기업인.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가하는 '대구.경북지역 혁신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지역혁신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하고 지역발전계획과 관련된 의견 수렴 및 자문 기능을 맡긴다는 복안이다.
현 정부에는 대구.경북 지역 출신 인사가 중요 포스트에 많이 포진돼 있다.
또한 지방분권을 하지 않고서는 나라 전체의 명운이 위태로울 정도로 수도권 집중화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 인식도 확고한 듯하다.
대구.경북으로서 이를 지역발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향래.김해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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