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장 큰 변화는 탈권위주의 문화가 어느 틈엔가 뿌리내려 간다는 점이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의 평가처럼 지난 2월25일 '새로운 대한민국'을 표방하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엄청난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으면서 오는 4일로 100일을 맞는다.
청와대는 지난 100일간을 '위기관리와 국정운영 시스템의 정비기간'이었다면서 그동안의 각종 탈권위주의와 제왕적 권력문화가 개선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이 구축되는 한편 국민참여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시기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갈등양상이 표출되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대응시스템이 마비되는 등 국정운영 시스템 문제가 제기되자 참여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개혁피로감과 불안감이 나타나고 있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사태와 5.18묘역에서의 한총련의 시위사태,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협상을 둘러싼 국정난맥상은 국정운영시스템 부재로 이어졌고 이는 국정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386참모들이 대거 청와대 비서실에 기용되면서 제기되기 시작한 인사문제는 국정혼란 이후 '아마추어들로 짜여진 정부와 청와대'라는 혹독한 비판으로 연결되면서 전방위적인 공격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사문제는 그래서 '참여정부는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참여한 정부'라는 등의 혹독한 비난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에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 정부에 비해 새로운 사람, 특히 지방인사들을 많이 쓴 것은 참신한 구상이며 오히려 경험과 관록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국정을)어떻게 해왔느냐"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시위 등 집단행동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적절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며 투정부리는 듯한 모습까지 노출하는 등 스스로 리더십을 손상시키며 국정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야당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고 나서자 정치권도 변화의 기류에 휩싸였다.
노 대통령은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특검법 정국에서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예상외의 결단으로 대야관계의 변화를 주도했다.
위기정국에서의 집권당의 부재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중의 하나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민주당은 출범 초반부터 신당창당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내부분열을 일으켜 개혁의 걸림돌 신세로 전락, 국정혼란을 가중시켰다.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현안이 중첩되면서 위기관리시스템이 문제되기도 했지만 북핵문제와 대미관계 등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현실주의적 실용주의노선을 채택, 국내외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방미외교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과 한미간의 공조원칙을 재확인받는 성과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저자세외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역대정부와는 달리 국가균형발전위와 정부개혁 지방분권위 등을 대통령직속기구로 만들면서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도 달라진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권한을 분산하는게 아니라 국정의 큰 구도자체를 바꾸는 일이므로 함께 국가차원의 큰 결단을 내리자"고 강조했다.
이밖에 안희정씨의 나라종금사건 연루의혹과 형 건평씨와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 등 측근과 친인척들의 부동산 관련 의혹은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을 흠집내면서 초반 국정운영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정운영 시스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은 과거정부와 크게 달라졌다.
청와대는 이를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시스템은 대화와 토론에 기초한 투명한 정책결정과정 그리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양대 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수석.보좌관 회의를 비롯한 국무회의 등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회의는 대부분 공개되고 정책결정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뤄진다.
고위직 인사의 인사시스템은 한 두사람이 결정하는 폐쇄형에서 비서실장과 인사보좌관, 민정수석 등이 협의, 결정하는 개방형으로 바뀌었다.
특히 다면평가가 도입되면서 정실인사의 여지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때와 같은 지역편중인사 시비는 사라졌다.
그러나 일부 부처인사에서 소외된 호남지역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편중인사 시비를 제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화와 토론에 입각한 국정운영시스템은 그러나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서야 했고 각 이해단체가 충돌하는 현안이 발생하면 각 부처는 손을 놓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사태가 이어졌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사태와 NEIS협상의 주체는 청와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책임총리제와 각 부처에 전권을 준다고 공언했지만 이같은 국정운영시스템은 원칙에 지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서야 고건 총리는 윤덕홍 교육부총리와 권기홍 노동장관을 질책했다.
청와대는 이에 "모든 변화에는 적응기간과 함께 인내를 필요로 한다"면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시스템이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불안과 회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탈권위적 권력문화로의 급격한 전환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도 설명했다.
참여정부가 구축하려는 국정운영시스템은 이제야 레일을 깔았을 뿐이며 탈권위에 기반한 국정운영시스템이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
최근의 국정혼란은 노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자초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국정전반에 걸친 위기감은 노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직설어법에서 기인된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며 위기감을 실토하고 나서면서 국정전반에 위기감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보다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미외교에서 현실주의노선을 선택했지만 지지세력들이 대미저자세외교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조하러 간 것이지 싸우러 간 것이 아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노 대통령은 한 신문 인터뷰를 통해 "조금 오버했다.
안했으면 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NEIS추진에 대한 전교조의 투쟁과 관련,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강경대응방침을 지시한 노 대통령은 교육부와 전교조가 합의하자 "어떤 명판결보다 화해가 낮다"며 혼선을 부추겼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지지세력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한 발 물러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노출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이에 "사회적 약자보호는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이자 비전"이라며 "그들이 집단이기주의를 들고 나올 때 대화와 토론을 하되 불법으로 나오면 단호히 대처한다.
원칙이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며 거듭 위기관리 시스템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정현안이 터질 때마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이 나서면서 왕수석 논란이 제기되는 등 국정운영시스템은 특정인의 월권문제로 옮겨붙기도 했다.
▨실용주의적 외교정책과 표류하는 경제정책
노 대통령의 실용주의적인 대외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는 평가와 실망했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실질우선의 실용주의이며 바뀐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는 어쨌든 한미정상회담에 이은 6월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확립한 뒤 이를 국가신인도 유지의 계기로 삼아 경제불안 분위기 해소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는 미국과 발을 맞추면서 다소 강경한 기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국민의 정부때와는 다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표류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벌개혁은 최근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방향을 제대로 못잡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재벌개혁 정책은 유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는 재벌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재경부와 산자부는 경기동향과 투자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친노조성향이 두드러지면서 외국인투자유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철도청의 파업사태와 화물연대사태 때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과 카드사의 부실경영 문제 등도 우리 경제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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