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이민 100년의 숨결-한국제는 부의 상징 코리안 넘버원

입력 2003-05-31 09:47:04

사회주의 투쟁의 정서가 푸르디 푸른 카리브해의 물결이 넘실대는 자연풍광을 가진 남국의 낭만과 묘하게 어우러져 이국적 풍치를 더해주지만 1959년 공산화(쿠바혁명) 직전까지 화려했던 건물과 가로는 땟국물 흐르듯 퇴색하고 흉물스럽게 낡아빠져 나라 전체가 거대한 슬럼가를 연상시킨다.

쿠바는 혁명 직후 우리나라와 국교를 단절,1961년 부터 북한과 정치.군사적 혈맹관계에 있는 적성국가인 까닭에 우리와 외교는 물론 몇개월 전까지 공식적인 경제.문화교류마저 전무한 상태였다.

호세 마르티공항 신청사 천장에 매달린 100여개 국가의 대형 만국기에서도 태극기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주요 도시와 고속도로에는 현대.대우차가 질주하고, 삼성.LG.대우의 가전제품이 번화가의 상점 진열대를 점령해 코리아타운이 생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70%가 차령 10~50년이 경과해 세계 구형차 전시장을 방불케 하지만 신차시장의 50~60%와 렌터카업계의 70%를 한국산 중소형차와 레저차량이 차지하고 있다.

TV와 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에어컨, 전화기 등 가정에 있는 웬만한 제품과 앨리베이터에는 한국 대기업 마크가 선명하고 중상류층이 즐겨찾는 전자제품 매장 매출액의 70~80%를 한국산 가전제품이 점유한다.

현지인들은 한국제품 소유를 부의 상징으로 여겨 한인 후손사회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쿠바는 지난 95년 한국에서 452만달러의 상품을 수입하는데 그쳤으나 매년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 수입이 늘면서 2001년 한국산 수입규모는 1억2천만달러로 급증했다.

직접교역은 없지만 파나마 베네수엘라 캐나다 등지를 중계한 간접무역이 활발하고 한국상품이 가격경쟁력과 품질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자본과 결합한 해산물 양식업체인 네네카(대표 최지호.30)와 멕시코 법인과 공동투자한 전자제품 대리점 등 2개 한국계 기업도 진출해 있다.

이는 카스트로가 40여년간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에 적대적 태도를 취해 온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변화라 하겠다.

2001년 4월에는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 일행이 제105차 국제의회연맹(IPU) 총회 참석차 쿠바를 방문, 정치교류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쿠바가 개최한 제15회 대륙간컵 야구대회에선 한국이 현지 한인들의 열띤 응원 속에 결승에 진출, 세계 최강 쿠바와 맞붙어 1대2로 아깝게 역전패했으나 쿠바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와 극심한 물자난에 따른 생존대책으로 95년부터 '관광 무역 등 달러를 벌 수 있는 산업육성만이 살 길'이라며 세계를 향해 빗장을 열어 제친 상태다.

정치관계를 떠나 한국기업의 투자나 교역, 관광객 입국을 적극 환영한다는 것이 쿠바정부의 입장이다.

쿠바 측은 한국과의 쌍방향 교류를 통해 자국이 집중 육성하는 바이오의학과 IT(정보통신) 및 에너지 개발, 관광산업 등이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고 한다.

이는 향후 양국 정부간 협력과 외교관계 수립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한국의 대기업과 30여개 중소기업은 지난해 11월 아바나에서 57개국 1천500여개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20회 쿠바국제무역박람회에 스페인에 이어 두번째 큰 규모로 참여해 자동차부품과 의료기기, 가전.통신제품, 문구류, 직물류,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이 행사에서 정부기관 최초로 쿠바 대외무역부 수출지원센터, 투자유치부 투자지원센터, 쿠바 상공회의소 등 3개 기관과 각각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현지 무역관 개설 추진 등 쿠바시장 진출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KOTRA는 또 지난 2월 양국 교류사상 처음 쿠바상의와 공동으로 아바나에서 중남미의 한국기업 17개사와 114개 쿠바 수입업체가 참가한 시장개척 겸 수출상담회를 갖고 1천750여만 달러의 상담액에 610만달러의 계약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들은 쿠바와 무역하는 기업에 대해 미국시장에서 불이익을 주는 미국의 정책과 쿠바기업의 결제수단 불량, 불투명한 인건비 구조, 열악한 도로.전기.통신체계 등으로 직접투자의 이점이 불확실하다며 공개적 시장진출을 망설인다.

이에 대해 통상전문가들은 미국과 마찰가능성이 없는 중소기업을 앞세운 상품수출이나 대미 우회수출기지로 삼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아바나의 달러 전용상점인 푼티아 쇼핑몰 간부 올만도 디아즈(46)씨는 "중국제품은 값이 싸지만 품질이 떨어지고 일제는 너무 비싸다'며 '경제난에 시달리는 쿠바인들은 질이 뛰어나고 가격도 적당한 한국상품을 최고로 치고, 한국기업의 직접무역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쿠바한인회장 헤로니모 임 김(77)씨는 "쿠바의 한인들은 쿠바인들이 한국상품을 선호하는 것을 볼 때면 민족 자긍심이 절로 생긴다'며 '양국 경제교류 활성화와 한국기업의 쿠바진출로 젊은 한인 후예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바나=강병균기자

kb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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