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대통령 설화

입력 2003-05-30 11:58:36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국민들의 대통령지지도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일희일비했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는 집권 초기 엄청 높았다가 임기말 급격히 떨어져 완전 바닥을 헤매는 이른바 양극화 현상을 보여 임기 중 평균 지지율 산출은 무의미했다.

그러나 몇몇 대통령은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애써 외면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하락에 안달이었고 높게 나오면 대권정착에 요긴하게 써먹었다.

대통령의 말과 지지도

며칠전 한 언론사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석달을 맞아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지지도 여론조사 결과가 이채롭다.

우선 이 여론조사에서 노대통령의 지지도가 김영삼 전전(前前)대통령과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동기 대비 지지율에 비해 너무 낮다는 것.

대선 투표 지지율을 약간 상회할 정도이니 집권 초 새 대통령에 보내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애정을 감안하면 어찌 이 같은 평가수치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최근 두달간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드러나 여타 대통령이 취임부터 1년정도 지지도가 꾸준히 상승했던 사실과 대조적이다.

또 이 조사에서 지지도 하락의 가장 큰 이유가 다른 대통령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중치 못한 언행'때문으로 나왔다니 대통령은 말을 잘할수록 설화(舌禍)에도 신경을 써야되는가 싶다.

노 대통령 설화가 소위 논어에 나오는 '일언부중리(一言不中理)면 천언무용(千言無用)'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차제에 "공직자가 말을 너무 잘하면 국민들을 우롱하기 쉽고 말이 많으면 기만하기 쉽다"는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공직자 다변경계 경구를 상기하고 싶다.

어쨌든 새 정부의 집권 100일 성적표가 이럴진대 새 정부 핵심 인사들은 빨리 사태수습에 나서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취임 당시 그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나도 사생활이 있다.

좀 쉬고 싶다"고 외치고 있으니 누가(형, 장관, 야당의원, 나라종금) 대통령을 이다지 피곤하게 만들었는가.

최근 대통령이 측근이나 각료들에게 쓴 소리, 된 소리를 늘어놓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적어도 대통령 본인은 현 시국에 대해 매우 불안해 하고 있는 듯하다.

밑에서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니 그저 혼자서 답답하고 그래서 고함을 치니 국민들은 대통령 체통 문제를 들고 나와 자제 못한다고 나무란다.

지금 대통령은 주변 정리가 제대로 안돼 취임 석달이 넘도록 과거 청산 작업에 매달려있고, 내키지 않는 토론이나 기자회견 등에 발목이 잡혀 새 정부 본연의 작업은 아예 운자도 못 띄우는 것 같아 답답하다.

늘 그랬듯이 적어도 새 정부 출범시 당연히 수반되는 사정작업도 새 정부는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 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정작업을 맡은 검찰만 봐도 그렇다.

경찰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릴까봐 자체 감찰에다 묵은 비리수사에 푹 빠진 모습이다.

여기에다 이따금 법원에서 왼(左)새끼를 꽈 바쁜 갈 길 막는다고 불만이다.

새 정부가 대통령 취임 100일(6월4일)을 맞아 그간 정책성과를 알리는 대대적인 홍보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성과홍보'라니 그간 무슨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들리기는 하나 언뜻 와닿는 게 없어 그 홍보내용이 몹시 궁금하다.

새 정부 다른 모습 보여줘야

새 정부가 출범이래 줄곧 진흙탕 속 싸움을 벌여온 언론에 대해 급기야 신세를 지겠다고 나선 것은 일단은 잘된 일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오보대응팀은 해체되는지 모르겠다.

이젠 쓸데없는 소모전은 지양해야 한다.

이번 홍보는 실적보다 향후 계획이 추가돼 사정계획 등이 포함된 듯 하다.

이번에도 조율되지 않은 발상을 혁명적이라고 마구 쏟아 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고증된 정책을 제시해 새 정부의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불과 3개월. 지난 1백일은 짧았지만 남은 57개월은 긴 세월이다.

새정부는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낮다고 불안해 할 것 없다.

높았다 낮아지는 것보다야 낮았다가 높아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국민들은 급진적인 개혁물살에 불안해하면서도 새정부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권 때보다 크다.

현재 지지도가 바닥을 넘보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큰 때문이지 등돌린 사람이 많은 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원칙과 일관성을 잃지 않고 국민들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젊은 대통령은 뭔가 큰 일을 해낼 것 같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변제우(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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