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자 국빈으로 모신 뜻은?

입력 2003-05-29 09: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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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역사스페셜은 석유파동때인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원유 확보를 위해 펼쳤던 사우디 왕가 회유책과 중동 진출의 숨겨진 비화를 다룬 '석유확보작전! 사우디왕자를 접대하라'(오후 8시)편을 방송한다.

1973년과 79년, 두 번의 석유파동은 국고를 바닥내고 경제위기를 가져왔다.

특히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발표하고 나섰던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위기상황이었다.

석유가 바닥나면 중화학공업 정책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석유난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잡는 것.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석유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열쇠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차별공급 선언에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석유확보는 국운이 걸린 과제가 됐다.

이때부터 박 정권은 '사우디 프로젝트' 수행에 나선다.

우선 정부는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나이프 왕자 일행을 초청, 국빈 대접에 나선다.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가며 초청했던 나이프 왕자에게 정부는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외국대사로는 극히 드물게 대통령과의 접견 일정까지 마련한다.

당시 왕자 일행은 국빈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접대를 받으며 일정을 보냈다.

또 석유가 바닥날 위기에 처한 정부는 원유 공급 교섭 출장을 추진한다.

오원철 경제 2수석이 주축이 되어 미국을 오가며 석유를 확보하는데 노력했고 결실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무리없이 석유가 공급 되어야 할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다.

정부는 다시 중동으로 특사를 파견해 대아랍정책을 편다.

이후 사우디와의 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비우호국에서 해제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발로 뛰며 석유확보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유값으로 경상수지 적자는 기존보다 4배 이상이 늘어나고 우리나라는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

새로운 돌파구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해결책은 중동 진출. 각료급 사절단이 중동에 파견되고 이후 토목, 전기, 건축 등 다양한 분야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정부의 원유확보작전과 중동으로 진출해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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