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히로시마와 대구

입력 2003-05-29 09:47:07

일본 히로시마(廣島)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히로시마는 대구의 자매도시다.

하지만 대구와 히로시마의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100일 전 대구시내에서 나는 마치 히로시마에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것도 58년 전의 히로시마에…. 새카맣게 된 벽, 녹았던 플라스틱, 그리고 상처를 입거나 목슴을 잃었던 수 많은 시민들….

2월18일의 지하철참사 후, 중앙로역 구내에 섰던 나는 말로는 표현을 못 할 공포와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그 감정은 원자폭탄을 맞았던 히로시마와 통하는 것이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관 혹은 역사인식이 다양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있다.

원폭 이후 히로시마는 원폭의 상처에서 회복을 하는 것과 동시에 핵무기의 무서움, 평화의 중요성을 세계에 호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평화를 기원할 공원에서는 위령비나 자료관을 만들고 피해를 상징할 건물을 보전하는 등 평화의 불씨를 계속 태워 왔다.

냉전시대에 강대국들이 반복했던 핵무기 실험에 대해서도 한번도 빠짐 없이 항의문을 보내고, 매년 8월 6일에는 평화를 기원할 기념식을 해왔다.

또 각종 NGO나 교육기관에서도 평화의 중요성을 호소해왔다.

그 힘은 크지 않았지만 적어도 서계적으로 '히로시마'의 이름을 알리고, '히로시마=평화'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과연 대구는 이번 지하철참사에서 회복하는것과 동시에 '안전' 이란 이미지와 '대구'란 이름을 연결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의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다가온 U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길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번 참사로 '대구=참사'라는 이미지를 '대구=안전'으로 바꿔가길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활동 하고있는 YMCA에서도 유치원생과 어머니가 희생을 당했다.

나는 지금도 1주일에 한 두번씩 시내로 나가면 중앙로역으로 가서 그들의 사진 앞에서 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다.

또 대구를 방문한 일본인에게는 꼭 중앙로역을 안내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참사 현장은 언젠가 정리 되고 없어질 것이다.

그 때 참사를, 희생자를, 그리고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들을 잊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참사 100일이 지난 지금, 많은 문제들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이시바시 히데키(34·일본·대구 YMCA 자원봉사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