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3-05-28 09: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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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동천(冬天)'

미당 문학세계가 압축된 원형질의 시다.

즈믄 밤 꿈으로 씻겨 투사된 것은 초승달이고 매서운 새는 솔개이리라. 영원성과 현실성, 탈속과 범속, 난초를 친 것 같은 동양적 선과 여백이 더 가감할 수 없는 수사로 주옥처럼 빛나고 있다.

우리 시의 하늘에 몇 안되는 절창으로 높이 떠 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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