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스님의 몸은 가랑잎 같았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0㎞가 넘는길을 삼보일배로 50여일 넘게 오시다 보니 아직도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서울을 목전에 두고 탈진해 쓰러진 스님이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인가 병원으로 갔더니 그날 아침 퇴원하셔서 다시 합류하셨다고 한다.
일요일(5월 25일)은 아침부터 비가 흩뿌린다.
그 전날부터 혼자 잠을 설치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가서 먼 발치라도 그 분들을 뵙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다
누가 뭐라하지도 않은데 자꾸 내 스스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명색이 환경운동을 했다는 내가 저렇게 목숨을 걸고 새만금을 지키겠다는 분들에게 먼 발치에서라도 감사 인사를 드리는게 옳은 일이라는건 뻔히 알겠는데, 그 동안 아무 한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 근처에 얼씬거리는게 오히려 누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고. 그래도 그 먼길을 목숨건 고행으로 서울까지 오셨는데 가서 뵙는게 도리다 라고 생각하고 운동모자를 눌러쓰고 여의도 공원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새만금을 살리자'라는 표어를 적은 노란 조끼를 입고 몰려 서있다.
텐트앞에 서 계신 문규현 신부님을 만나니 눈물이 울컥 솟는다.
그 분을 가만히 안았다.
그전에 가까이서 신부님을 뵌 적도 없는데 육친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조용히 웃고 계신 새까맣게 그을은 얼굴에 눈만 맑게 빛나는 신부님이 예수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부님의 야윈 어깨를 안고 신부님 귀에다 연인같이 속삭였다.
"사랑해요" 라고 말하니 가슴이 후루룩 떨리고 눈물이 흐른다.
처음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서 삼보일배를 하기로 했다고 했을때 문규현 신부님의 형님이신 문정현 신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라리 우리 형제가 함께 분신을 하자". 그것이 삼보일배보다는 오히려 덜 힘들 것이라는 뜻으로-.
TV로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이 시대의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생태계 하나를 제대로 보존하고 살리지 못해서 저분들이 저런 고행을 하게 만드는 우리들은 어떻게 속죄를 해야 하는걸까 생각하면서-.
잠시후 묵언이라는 팻말을 가슴에 늘어뜨린 수경 스님이 텐트에서 나오신다.
병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오신 스님은 이젠 눈도 잘 안 보이는 증상까지 나타난 것 같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는 주변에선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모두 울고 있다.
그러나 스님의 손은 생각보다 힘차다.
맑게 웃으시는 수경 스님의 몸은 가랑잎 같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잠시 행사를 마치고 여의도 공원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삼보일배를 시작한다.
먼 발치에서 우리들은 그저 세걸음 걷고 잠시 묵념하면서 그분들을 따랐다.
고작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그저 묵념만 하면서 걸었을 뿐인데 다리가 뻑뻑하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0㎞가 넘는 길을 삼보일배 하면서 걷는다는건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은 신의 의지로 인간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계신 것이다.
너무도 부끄러워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들의 잘못이 어찌 환경문제 뿐이겠는가-.
그동안 뻔뻔하게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것처럼 만사를 남에게 핑계를 대거나 생색만 내지 않았는지. 생색나고 편한 곳에만 얼굴을 내밀고 책임은 지지 않은채 권리만 따 먹은 내 꼴이 한없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의 목숨건 삼보일배는 새만금 살리기 보다 더 소중한 인간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연극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