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버지가 초교생 딸이 저금통에서 1천원씩 자주 빼내갔다는 이유로 딸의 손가락을 부엌칼로 잘랐다.
또 어느 아버지는 10대의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다 철창신세를 졌다.
한 아내는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는 남편을 죽였고….
일일이 거론조차 하기 싫은 엽기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비정하고도 무서운 세상이다.
전화상담을 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입밖으로 차마 내어놓을 수 없는,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일들이 숱한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탄한다.
어쩌다 이렇도록 진창이 되었나. 지구촌에 공포를 퍼뜨린 괴질 사스는 병증이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이런 가정범죄는 은밀하게 일어나는데서 그 독성이 치명적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천륜도 안중에 없는 다중인격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1년 전, 월드컵의 '대~한민국'엇박자 함성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4천700만 국민과 500만 교민을 하나로 묶었던 뜨거운 에너지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 충일했던 에너지는 지금 흔적도 없다.
기세좋던 한국호는 겹겹의 풍랑 속에 허둥대고 있다.
가정은 가정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암울한 혼돈 속에 빠져있다.
온 국민을 행복하게 했던 그날의 에너지를 회복할 길은 없을까. '희망이 필요한 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바로 그 때'라고 확신에 차서 말해줄 사람은 없는가.
이지선이라는 여대생을 생각해 보고 싶다.
3년전, 교통사고로 전신 55%의 화상을 입었던 그녀는 의사마저도 포기했던 환자였다.
간신히 살아났지만 청순하고 예쁜 얼굴은 간데없고 흉터투성이 일그러진 얼굴로 바뀌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음에, 25번째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당당하게 감사와 기쁨의 삶을 얘기한다(그 나이에 그럴 수 있다니…). 상대방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지선의'히히~'하는 웃음은 또 얼마나 명랑한가. 하루 5만여명의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당신의 행복한 모습에 나까지 행복해집니다', '세상이 힘든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아름답기만 합니다'고 고백한다.
불행을 또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꾼 지선의 용기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주고 있다.
마치 동풍 속에 박쥐우산을 들고 홀연 나타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듬뿍 안겨주었던 동화 속의 메리 포핀스처럼.
지금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은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감동과 희망의 에너지를 되살리는 일 아닐까.〈편집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