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이민 100년의 숨결-잊혀진 쿠바의 한인들

입력 2003-05-24 0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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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고 정열적인 분위기로 여러 민족을 용광로의 쇳물처럼 동화시킨다는 '이방인의 천국'인 쿠바. 이 나라에는 현재 한인 이민 1세대는 모두 죽고 5세대째로 이어진 후손 640여명이 남아 있다.

최대 72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카르데나스 220여명, 마탄사스 150여명,아바나 140여명, 마르카네와 푸에르토파드레 각각 20여명, 바라데로 10여명 등 21개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정체성 위기를 심하게 겪고 있다.

헤레니모 임 김(77) 쿠바한인회장은 '쿠바인과 결혼하는 후손들이 급증해 쿠바에 완전 동화됐으며 대부분 생활이 궁핍한 서민층인데다 한국과 50여년간 단절되고 재쿠바 북한대사관과도 수년간 접촉이 끊겨 한인사회는 결속력이 약해지고 모국에 대한 관심도 희박해졌다'면서 '나이든 이민 2, 3세가 죽고나면 4, 5세대 젊은층은 한국을 잊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체 한인 중 순수혈통은 20%(150명) 이하로 모두 2, 3세대인 60~80대 노인들이다.

오는 2030년께 6, 7세대가 탄생해 한국계가 850명 정도로 늘면 순수혈통은 8%(70명)로 줄고 2050년께 한인수가 900명을 넘어설 때는 1%(10명)도 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2, 3세대도 거의 한국 말과 글을 모르고 4, 5세대 대부분은 한국문화에도 생소한 상태에서 6~8세대까지 내려갈 경우 후손사회와 한국을 이어줄 정신적 교감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 민족정체성 상실과 직결되는 현지동화 정도는 멕시코의 한인들처럼 성씨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어와 스페인어의 표기 및 발음차이로 인해 성이 여러가지로 변했다.

이씨는 l r y, 고씨가 c k 등으로 첫 철자가 분화됐다.

한씨는 h j y 등 무려 5개로 나뉘었을 정도다.

헤로니모 회장 자신도 우리말을 모른다며 '체계적인 한글 및 전통문화 교육은 엄두를 못내는데다 미수교국인 한국과의 접촉에 한계가 있어 가끔씩 쿠바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나 사업가들에게서 간헐적으로 고국문화를 소개받는 정도여서 정체성 확보는커녕 일부에서 알고 있는 모국문화를 지키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동양인과 학생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는 아내 크리스티나 장(75)씨에게 가족생계를 맡긴 채 자신의 택시영업 수입 전부를 전국의 한인가정을 챙기는 교통.통신비로 사용한다.

또 오리엔테종합대 부총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아들 넬손(40)과 육군 장성 파블로 박(63)을 한인사회 활성화에 노력할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등 헤로니모 회장이 한인사회 결속과 지탱을 위해 애쓰는 의지가 각별했다.

그와 함께 파블로 박씨 부인인 카달리나 주(73)씨 등 아바나의 한인 20여명은 수년째 매주 토요일 이르마 임 김(62.여)씨 집에서 친목회를 갖고 동질감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1년 전부터는 매달 1차례 베네수엘라계 수산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문윤미(30.여)씨를 초청, 기초적인 한글을 배운다고 했다.

주씨는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김치나 고추장, 장조림, 미역국 등 한국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워 직접 해먹고 있으며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몇가지 한국음식은 한국어로 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쿠바정부가 한인단체를 인정치 않고 집회를 못하게 해 '기독교인들이 신도집에서 단체예배를 본다'는 핑계로 모인다며 한인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자가 방문한 카르데나스와 마탄사스의 한인가정마다 슬픔과 인고로 점철된 애니깽농장 시절의 빛바랜 흑백 가족사진과 소형 태극기, 한국풍경 사진,한복차림의 인형, 각종 한국산 기념품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있어 한시도 조상과 모국을 잊지 않으려는 애틋함이 엿보였다.

카르데나스에 사는 호세 홍(68)씨의 낡은 아파트에는 매주 토요일 저녁 이 지역 남녀노소 한인 20~30여명이 모여 '한국식'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성경책을 읽고 이민선조들의 고생담과 고국풍습에 대해 얘기하면서 화합을 다진다.

홍씨의 부인 디오니시아 박(69)씨는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지만 모두들 몇가지 표현과 단어밖에 알지 못하고, 이마저 잊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우리말 몇마디가 가능한 것은 캐나다 교포 이일성(62)씨가 지난 2000년 3월부터 사비를 털어 마탄사스에 1년9개월간 머물며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쿠바 각지의 한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글과 한국무용 등을 가르치면서 고국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기 때문이라며 고마워했다.

이씨는 경비가 바닥나고 건강이 악화돼 캐나다로 돌아갔다.

한인 후손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민족특유의 근면성과 교육열로 대부분 고등교육을 마치고 쿠바인 평균수준의 생활을 하며 정체성 상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애절하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부는 군대와 공직의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교수, 의사, 변호사, 건축가, 엔지니어, 대형식당 업주 등 쿠바사회 중심부의 전문직업인으로 인정받고 새로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인 후손 대부분은 옛 소련 해체와 미국의 경제봉쇄, 생산기반시설 붕괴 등으로 장기화된 경제난과 물자부족으로 힘들게 살고 있다.

이민 4세 실비아 김(24.여.카르데나스)씨는 '우리 젊은이들도 조상의 나라에 대해 알고 싶고, 국력이 신장된 한국인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한국을 소개한 카세트.비디오 테이프나 각종 홍보.인쇄물, 사물놀이 기구와 전통악기, 한국요리책, 한글사전과 교과서 등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카르데나스=강병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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