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003-김천 수해복구 얼마나

입력 2003-05-24 09:21:09

지난해 8월말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그 상흔이 아직 채 아물지 않은 곳도 적잖다.

김천도 그중 한 곳이다.

강릉과 함께 최대 피해지역이었던 김천에선 27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3천500여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766가구 2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택 500여동이 힘없이 무너졌다.

농경지 1천500ha도 물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서진 도로와 교량 136곳, 제방 붕괴 등 하천 피해도 160건이 넘었다.

공공시설 피해만도 1천860여건에 3천여억원에 달했다.

대덕면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가 일흔 평생 이렇게 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후 9개월이 지났다.

다시 수해를 걱정해야 하는 장마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봄엔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고 있다.

때문에 수해 복구 작업의 차질 및 재피해 우려도 높다.

수재민들은 컨테이너 생활을 모두 정리했는지, 집과 논·밭은 다 복구됐는지, 하천과 도로 사정은 어떤지 등 수해 이후의 모습은 어떨까.

피해가 컸던 김천시 구성·지례·부항·대덕면 일대. 이들 지역은 감천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때문에 갑자기 쏟아진 많은 비로 감천의 제방이 터지면서 이들 지역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감천 전구간에서 하천 제방 붕괴 및 범람 재발을 막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하천폭 확장 및 교량·제방 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되다보니 하천이라기보다 파헤쳐지고 흐트러진 모습이 마치 골재 채취장 같다.

한참을 둘러봐도 성한 제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곳곳에 철제빔으로 만들어진 가교가 놓여져 있어 전쟁터 같기도 하다.

새로 만들어진 흙제방이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지만 이를 견고하게 하는 제방 호안공사는 아직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장마가 지면 쉽게 무너질 듯 위태롭다.

가교 옆에 만들어지고 있는 교량도 아직 다리 형태를 띠지 못한채 하부구조 공사가 한창이다.

김천시청 한 관계자는 "장마 등으로 인적·물적 피해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공사, 특히 제방 호안공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6월말 이전엔 마칠 계획"이라며 "그러나 교량 등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 구조물은 수해 피해를 입지 않는 범위내에서 절대필요공기를 지켜 완벽하게 시공할 방침"이라고 했다.

감천 공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성면 구성공단 부근의 하천폭 확장 공사. 산을 절개해 88m였던 하폭을 140m로 넓히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때문에 절개부분엔 황토빛 허리가 흉물스레 드러나 있다.

이곳 하폭이 상류보다 좁은 탓에 지난 태풍때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수용하지 못해 하천이 범람하고 터져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지난 1993년 3km 정도에 걸쳐 구불구불 흘렀던 감천을 25만평 규모의 구성공단 조성을 위해 700m 정도의 직강하천으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김천시는 감천 수해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번 기회에 구성공단 구간 외에도 수해피해지역 35km 구간에 사업비 520억원을 들여 하폭 140~152m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하천 옆 도로변 상가와 주택들이 쓸려내려간 자리는 아직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가옥 및 상가 침수 피해가 특히 컸던 지례면. 수해로 끊긴 국도 공사가 아직 진행중이다.

둑이 터져 하천이 범람했던 지례면소재지엔 옛날 집과 새로 지은 집이 어색하게 병존하고 있다.

대부분 집과 상가들은 물을 빼낸뒤 이미 생활과 영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할머니도 있다.

김순이(70) 할머니는 지례면 교리에서 9개월째 혼자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 집과 할머니 집이 수해때 둘다 떠내려갔다.

아들네도 집이 없어 식당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낮엔 아들 식당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밤엔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 집을 지으려 해도 돈이 없어 지금까지 그냥 컨테이너에서 지냈는데 이젠 더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아들집만이라도 조립식으로 짓기로 했어". 김 할머니의 푸념이다.

지난달에서야 집을 짓고 생활을 시작한 주민도 있다.

김영자(58·여)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고 한다.

"당시 집이 몽땅 떠내려가 흔적도 찾을 수 없었지. 거기에다 수재민을 위한 컨테이너마저 구하지 못해 수개월동안 자비를 들여 10만원짜리 월세를 살았지. 컨테이너에서 살지 않다보니 위문품이나 생활필수품도 지급받지 못했어. 그렇게 저렇게 연명하다 지난달에야 겨우 조립식 집을 짓고 입주하게 됐어". 그러나 김씨의 집은 여전히 어색하다.

담장이 없다.

담장은 고사하고 쓸려내려간 집 기초를 다지기 위해 흙, 모래를 구입하는데도 자비 70만원을 들였다고 한다.

김씨는 "담 쌓는데만 1천만원 정도가 든다고 해 엄두도 못내고 있다"며 "담이 아니라 꽃나무라도 심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모래, 흙으로 뒤덮여 뻘 같았던 하천 주변의 논, 밭 대부분은 제모습을 찾았다.

대덕면 가례리도 논, 밭의 형체를 회복한채 벼 등이 심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모심기를 해야 하는데 아직 '보'가 만들어지지 않아 물을 댈 수가 없다며 걱정한다.

한 60대 할아버지는 "시청에서 보를 만들어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선 손도 대지 않아 비가 많이 와도 보가 없어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상태"라며 불만이다.

이에 대해 시는 급하게 보를 만들면 부실공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공급, 농사짓는데 문제가 없도록 한뒤 보를 견고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감천의 지천인 부항천을 따라 들어간 부항면의 복구 작업은 조금 늦은편이었다.

댐 건설 예정지여서 아직 복구와 이주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김천시의 수해복구는 75% 정도 이뤄진 상태다.

하루평균 5천여명이 복구 작업에 투입되고 2천500여대의 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올 봄 비가 잦아 복구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흙을 파내 복구한 곳에 다시 흙이 쓸려 내려가 새로 파내야 하고 비 때문에 장비 진입도 어려워 복구기간 중 보름 정도의 복구 기간을 손해봤다는 것. 이에 늦어진 공기를 맞추기 위해 레미콘 구조물 타설 작업 등 야간 작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김천시 정용후 건설과장은 "주택과 농경지 복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감천내 일부 교량을 제외한 도로와 교량·제방·하천 공사도 다음달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또 "복구 작업이 끝나면 수해 복구 전에 비해 10년 이상 발전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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