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행동강령 파문... 식당가 폐업위기

입력 2003-05-23 12:00:52

공무원 행동강령(윤리강령)이 발효된지 5일째인 23일 대구시청, 경북도청, 법원, 구청, 경찰서 등 관공서 인근 고급식당들이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문닫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대구의 관공서 주변 한정식·일식·식육식당들은 지하철 참사, 이라크전, 사스(SARS·증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등으로 인한 불황의 3중고 속에 주고객인 공무원들의 회식마저 사라져 개점휴업상태를 보이고 있다. 점심시간의 경우 음식점마다 지난주보다 손님이 40-50%나 격감했다. 그나마 몇명씩 온 일반손님들도 고기나 술은 자제하고 값이 싼 식사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무원들은 대체로 이번 윤리강령이 현실성이 없다는데 공감하면서도 법적 구속력에 따라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점을 우려해 일단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 관공서 인근 식당가=22일 낮 대구 공평동의 A식당엔 점심시간 1시간동안 식사 하러온 손님이 2, 3명씩 3개팀에 불과했다. 평소 공무원들이 많이 찾았지만 윤리강령이 발효된 이번주 들어 아예 발길이 끊어졌다. 지난주까지 15명정도로 가끔씩 있었던 단체손님들의 예약도 사라졌다. 고기 1인분 1만3천원에 밥을 포함해 1만6천원선이지만 그나마 찾아온 일반손님들도 값이 싼 열무밥 한그릇(5천원)만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당주인은 "자주 찾아오던 단골손님마저 끊겨 가게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인근 B식육식당의 경우 15-20명 정도의 단체회식이 한달에 10회로 많았으나 이번주부터 사라졌다. 지난 19일부터 평소 많이 찾던 공무원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식당주인은 지하철 참사와 사스의 여파로 매출이 격감, 종업원 1명을 줄여가며 불황 극복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판에 "윤리강령'이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고 말했다.

고성동의 C식당도 이번주부터 손님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 이 식당 종업원은 가끔씩 오던 외국바이어들의 발길도 사스로 끊겼는데 이번주부터 공무원들마저 거의 찾지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일부 손님은 3만원 기준에 맞추기 위해 카드를 맡기고 몇일간에 걸쳐 나눠 결제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반응=한 사무관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어렵다고 하는 판에 '윤리강령'으로 인해 식당경기마저 얼어붙는다면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정권이 바뀌면 처음엔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조금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의 한 공무원은 이젠 손님과 횟집이나 고깃집에 가거나 술마시기가 어렵게 됐지만 절약차원에서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사업자와 만나서도 고급식당 대신 보리밥집에 가게 됐는데 아무래도 '윤리강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5만원이 넘는 결혼식 축의금의 경우 봉투를 열어 확인후 돌려주기도 어렵지만 형사처벌까지 예고된 상황이라 강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9일 시행에 들어간 공무원 행동강령은 △직무 관련자로부터 3만원을 넘는 금전·선물·향응 △5만원 초과 경조금품 △동료 공무원으로부터 전별금·촌지 등의 접수를 금지하고 있다.

민병곤기자minbg@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