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페론주의'의 함성

입력 2003-05-22 12:00:52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우리에게 딱, 처지를 되돌아 보게 하는 나라다.

국민소득 1만달러 이후에 온 위기를 한쪽은 슬기롭게 극복했었고, 다른 쪽은 정부가 인기영합 정책을 편 부작용으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선진국 진입에 성공, 실패가 극명(克明)하게 대비되는 국가다.

네덜란드는 지난 71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섰지만 이후 10년간 각종 규제와 노사분규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서유럽 최악의 문제국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민소득 2만5천달러를 넘어섰고 연간 교역 규모는 9천억 달러 수준으로 세계 9위다.

세계 화훼시장의 60%를 석권하고 씨앗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국가다.

총인구가 1천6백만명으로 남한인구 3분의1, 땅 면적이 남한의 절반 남짓한 이 작은 나라가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우선 정부의 훌륭한 정책적 판단을 들 수 있고 노사가 과감한 이해(理解)의 틀을 마련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난 82년 정부, 사용자, 노조 3자가 해고를 자제하는 대신 고용주의 안정적 투자를 보장해주는 노사화합 모델을 만들어 냈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위기를 탈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임금인상 억제와 사회보장제도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 병행은 네덜란드를 지금도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 만들었다.

흔히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실패한 대표적 국가로 꼽는 아르헨티나는 어떤가. 알다시피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강국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 12월 예금 인출제한(꼬랄리또)과 대외채무 지불유예를 선언한 어떻게 보면 '신용불량국가'다.

이런 원인(遠因)을 페론주의에서도 찾는다.

지난 40년대 중반부터 당시 집권자인 후안 D 페론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으로 관제노조를 창설하는 한편 노동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확대하고 실직자들을 위한 과도한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결국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불렀고 균형이 깨진 노사관계는 기업들로 하여금 기회만 있으면 해외로 떠날 빌미 제공이 아니었는가 싶다.

정말로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아르헨티나 상황이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페론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참여정부의 노조편향 정책의 상관성도 엿보게 한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노조의 최상급 단체로 CGT(노동조합 총연맹), CTA(노동자연맹), MTA(노동자 운동)등 3단체가 있다.

이 노조단체들이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노동법개정등을 놓고 대립의 각(角)을 세우는 통에 경제 뿐만 아니라 국가운영자체를 복잡하게 만들고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포항 화물연대 작업거부로 촉발된 물류대란, '공무원 노조'쟁의 행위 찬반투표 강행,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으로 사회적인 갈등을 겪었거나 파행도 예고돼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영토확대를 노린 무분별한 다툼의 여지가 전혀 없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가끔 파업 해결 과정을 보면 노조의 강경태도 고수는 어느 한쪽 노총에 대한 선전(宣傳)요인도 한몫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양대 노총의 영향력 확대 차원의 경쟁이 정치화로 치닫는 기능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 노동운동도 국제적 수준에 맞출 시기가 됐다.

단순한 약자 논리에 머문다면 노조의 조직률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노조 조직률 12%선이 수십년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기 힘든 요인을 '강경한 노조'로 지적하는 경우를 가진자, 강자의 시각으로 밀쳐두거나 외면할 일이 아니다.

균형잡힌 노사관계 설정의 책임은 노조 쪽에도 분명하게 있다.

분명한건 노동조합도 이익집단이라는 것이다.

사용자단체와 똑같은 성격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공익단체가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정부의 노동정책 균형성 유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물연대에 줄건 다준 결과가 어떤 상황을 불러 왔는지는 택시.버스업계의 움직임을 보면 안다.

유류세 특혜를 우리에게도 적용하라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없다.

형평성 문제도 있거니와 집단작업거부를 '한.미정상회담과 내년총선'등을 감안한 정치논리로 풀었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참여정부가 지향(指向)하고 있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구축의 절대 관건은 균형의 유지에 있다고 본다.

어느 이익집단의 편에 선다면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수도 있다.

또 분명한게 있다.

이미 고용상태인 노동자들의 이익증대는 청년 등 실업자 일자리 창출이 더욱 어렵게 된다.

균형유지 네덜란드와 포퓰리즘 페론주의 아르헨티나, 우리의 처지를 살펴보게 하는 나라다.

최종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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