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다보면 '아 저 사람이 아직도'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대개 정치인이나 한때 사회저명인사로 인정되고 있던 분들인데, 대중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거나 적어도 실망을 준 상황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것이 순리에 가깝다고 보여지는 분들이다.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어서, 당사자들로서는 아직 사회로부터 망각되기가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수 국민의 정서로는 이제는 좀 덜 나섰으면 좋겠다고 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전직 대통령이든 전직 국회의장이든, 또는 저명한 사회단체의 장을 역임한 사람이든 사리는 같을 것이다.
공직을 맡든 안 맡든 사람의 근본적 가치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을 것임에도, 자신을 변명키 위해서나 세상의 평가를 억울하게 생각한 나머지 때 이른 자서전을 쓰거나 영양가 낮은 회고록 따위를 펴내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보인다.
왜 이런 엇박자가 생기는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은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분수란 스스로 분별할줄 아는 슬기라고 볼 수가 있다.
객관적 상황에 비추어 자신이 설자리와 해야 할 역할을 정확히 가름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춘 사람을 우리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자기를 객관화 하여 살필 수 있는 여유랄까 조감력(鳥瞰力)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이웃과 사회, 국민의 의식과 정서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스스로의 분수를 지킬 수가 있다.
사실 매사에 도를 넘지 않고 스스로의 몫과 자리를 헤아려 지킬 줄 아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은 의외로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분수를 지켜야 하는가.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우선 품위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노추(老醜)라고 했던가. 나이 들어가면서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추하게 보인다.
반면에 스스로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은 무리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떳떳하고 단아한 기품을 지킬 수가 있다.
90이 넘으신 피천득 선생이나 유달영 선생같은 분을 보라.
분수를 지켜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분수 모르는 사람들의 지나친 자기과시나 노출욕은 일반인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이점은 이미 국민적 평가가 끝났다고 생각되는 구정치인이나 과거의 사회 저명인사가 세인의 이목을 끌기 위하여 불쑥불쑥 박자 안 맞는 지상출현을 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역겨움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수긍이 가리라고 믿는다.
분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냉철한 현실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그것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외교나 행정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타당하리라고 믿는다.
노 대통령의 방미결과를 둘러싸고 대미굴욕외교니 개혁정신의 실종이니 하는 등의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력이나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서 본 대한민국의 현실적 분수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의 영역에 있어서도 비상한 개혁의지를 가지고 출발을 하였지만 야당과 의외로 완강한 보수세력의 저항, 관료들의 전문성 논리, 경제안정을 앞세운 재벌기업의 노련한 포용책 그리고 이른바 개혁세력의 무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보면 분수를 넘는 개혁의지의 실현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하루하루 깨우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당초의 뜻과는 관계없이 융화와 개혁을 병행하면서 단계적으로 이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분별의 슬기'를 서서히 깨닫게 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가 있다.
바람직한 분수지키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소리를 내지 않고, 따라서 스스로가 한 말의 구속도 덜 받으면서 자신이 설 자리와 해야 할 일의 몫을 정확히 가리면서 묵묵히 가족과 이웃,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분이야말로 분명 국민들의 눈에 분수를 지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시끄러운 반면 분수를 아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질서가 있고 평화로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의 분수를 깨우쳐 우리 사회가 영원히 평화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국민대 총장.산학기술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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