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현안 이렇게 풀자(5)장기 전략 마련

입력 2003-05-19 12:02:02

"정돈된 느낌이 없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근 대구.경북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대하는 시민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무엇인가 분주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란스럽기만 할 뿐 이들 프로젝트들이 대구의 미래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혼란스러움은 이들 프로젝트들이 대구시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 마스터플랜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지역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지역민들이 공유하는 미래상과 발전전략이 없다보니 이 시점에서 왜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자연히 추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장기적 전략없는 단기적 대응이라는 지역의 폐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 탄생의 주체에서 밀려난 90년대 이후 10년동안 지속되어온 악습이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지금까지 대구.경북에는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발전전략이 없었다.

정권의 탄생 주체일 때에는 집권자나 지역 정치맹주가 제시한 비전이나마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왜 우리를 소외시키느냐'고 떼를 쓰는 것 이외에는 전략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볼 때 대구시가 야심적으로 내놓았던 위천공단 조성사업이 10년째 표류하고 있는 것도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을 하겠다는 막무가내식 의지만 있었을 뿐 낙동강 하류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대한 완벽한 방어논리의 개발이라는 전략적 접근이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행태가 양성자가속기 유치사업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구대 홍덕률 교수는 "대구시의 사업추진 방식은 사전준비 없이 사안마다 급작스럽게 대응하는 것으로 정형화되어 있다"면서 "양성자가속기 유치의 경우 다른 지자체들은 정부의 계획이 마련된 뒤 1년 이상 준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구시는 과연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 마스터플랜이 마련되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지역 현안사업 선정과 추진방식 결정 과정의 폐쇄적.독단적 구조가 지적되고 있다.

정권의 탄생 주체였을때 집권자나 지역 정치맹주가 결정하는대로 따랐던 관행이 지방자치 시대에도 그대로 답습되다 보니 필요한 지역사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추진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대구에는 지역 사업이 행정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소수에 의해 공개적 의견수렴없이 결정되는 폐쇄적 문화가 지배해왔다"면서 "공론을 거치지 않은 지역사업은 중앙정부와의 협상에서도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도 "전문가나 시민의 합의에 의해 사업이 결정되지 않고 지자체, 정치권, 경제계 등이 각개 약진하다보니 사업추진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 결과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가 안되면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이 관행화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덕목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바로 개방성과 다양성이다.

대구.경북지역 특히 대구는 획일적인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정치는 특정 정당이 독점하고 있고 이른바 주류라는 것도 보수적 인사 일색이다.

이같은 획일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공론의 장도, 이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마스터 플랜의 마련과 전략적 접근이라는 유연한 사고도 나올 수 없다.

정치.사회.문화 전반에서 다양성과 개방성이 확보될 때 현재 경제개발의 주요 수단으로 꼽히고 있는 외부자본과 기술의 유치도 가능해진다.

김만제 의원은 "인구가 250만명이나 되는 대도시이지만 국제감각은 제로"라면서 "시민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구.경북은 지금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현안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길은 있다.

이제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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