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불황. 어느덧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한창이어야 할 건축 경기조차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 있다. 16일 새벽 둘러 본 대구시내 인력시장은 그곳 사람들의 때묻은 차림새와 깊게 파인 주름살 만큼이나 시름겨웠다.
◇지치고 고단한 풍경
세상이 어둠으로부터 깨어나려 하는 새벽 4시40분쯤.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에는 4명이 나와 있었다. "오늘은 일거리가 있어야 할텐데… 어제도 비가 와 하루 공쳤거든…" 박씨(57)가 한숨을 담배연기에 실어 냈다. 점차 사람이 늘더니 새벽 5시쯤 되자 20여명으로 불었다. 6시쯤에는 70여명으로까지 늘었다.
이들 모두가 이날 새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절반 이상에겐 이미 예약된 일이 있다고 했다. 예약자들은 30, 40대의 기술 가진 숙련공들. 이곳을 약속장소로 이용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 많거나 잡역부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날도 날일 잡기조차 힘들어 했다. 인부를 구하러 온 승합차가 가끔 멈춰 설 때마다 일대는 난장판이 됐다. 서로 먼저 올라타려는 몸싸움이 치열했다. 이날은 상여 메는 일거리가 2건이나 있어 13명이 타고 갔다. 만화책을 옮기는 단순노동에도 2명이 선택됐다. 노임은 6만원. 건설현장 일자리가 돈벌이에 좋지만 요즘은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용역업체에 밀리는 날품팔기
안지랑네거리 인력시장 상황은 더 심각해 보였다. 일거리 얻기가 쉽잖을 것이라는 실망감때문인지 새벽 5시20분이 돼서야 한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온다는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인 것은 6시쯤. 20여명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일감을 기다렸다. 불황 얘기가 계속됐다. 그리고 이날 아무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며칠간 계속된 '헛탕'을 오늘도 계속한 것이었다.
인력시장에 드나들기 전 분식집을 했다는 장씨(55)는 지난 한 달 동안 겨우 하루 일을 얻었었다고 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일거리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내는 아파 누웠고 아들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뒷바라지 해야 하는데…" 장씨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인력시장의 고단한 일꾼들은 최근 2년여 사이 급증한 무허가 용역업체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을 더 힘겹게 한다고 했다. 새벽 인력시장보다 1, 2만원 낮게 일당을 책정함으로써 일거리를 쓸어 간다는 것.
그러나 10년 이상 공사판을 돌아 온 고참들은 용역업체에 내는 10% 이상의 수수료라도 아끼려 알음알이로 일거리를 구한다고 했다. 25년간 목수일을 해 왔다는 최씨(64)는 "차라리 벼룩이 간을 내먹지…"라며 혀를 끌끌 찼다.
◇돌아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아침 7시가 넘자 파장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일자리 경쟁에서 탈락한 열댓명은 모닥불 주위를 떠날 줄 몰랐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전 8시쯤. 몇몇은 벤치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일부는 아침 산책 나온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일을 못구한 날은 아들이 학교 가고 난 후에 집에 들어가 시간을 때우다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다시 집을 나오지요". 돈벌이를 못해 고3인 딸과 중3인 아들, 그리고 아내 볼 면목이 없다는 서씨(45)의 표정은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혼자 소주를 마시던 하씨(38)는 IMF사태로 실직한 후 4~5년간 '노가다판 생활'을 통 못벗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 얽매이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게 돼 직장생활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연이은 헛탕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인력시장을 다시 찾게된 사연을 하씨는 그렇게 설명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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