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현안 이렇게 풀자-4)한국지하철공사 설립

입력 2003-05-17 11:55:48

"정부가 대선 공약을 이행해 한국지하철공사를 연내에 설립키로 했다.

이로써 빚에 허덕이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 전국 주요도시가 빚 고민에서 벗어났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2008년 3월에나 나올 법한 언론보도다.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하철 빚으로 대구가 이미 파산 지경에 몰리고 부산은 2007년말 부산지하철공단 해체로 빚을 떠안게 되면서 두 곳에서 연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광주, 대전, 인천도 지하철 부채 누적으로 행정에 생동감을 잃었다.

신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은 자기의 텃밭 도시가 지하철 부채에 허덕여 한국지하철공사를 설립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터라 '공약화'에 여야 모두 이견이 없었다". 머잖아 눈 앞에 닥칠 상황일지 모른다.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이 '2.28 대구지하철참사'가 터지자 안전을 확보하는 근본방안은 정부가 지하철 건설과 운영을 맡는 길밖에 없다며 부산, 대구, 경북, 대전, 인천, 광주 의원들을 설득, 한국지하철공사법을 4월 임시국회에 제출했다.

대구시의원들도 한국지하철공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하며 맞장구를 쳤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이강철 민주당 대구시지부장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나 "어차피 정부가 맡아야 할 일이다"며 "한국지하철공사를 설립해 대구, 광주, 대전지하철 문제를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지부장은 또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의 관건은 예산이라고 보고 기획예산처 차관을 만나 소요 재원을 파악해 예산을 마련하도록 요청했다.

정치권이 이처럼 움직이자 대구시 공무원과 시민들은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데 설마 이 정도의 요청을 외면하지는 않겠지"라며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찬물을 끼얹었다.

'장기적 과제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

이후 대구에서의 한국지하철공사 설립 논의는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대구는 안되는 일만 요구하는 듯하다.

대구는 되는 게 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일부 지역출신 장.차관과 의원들조차 막대한 소요 재원, 농촌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들며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2조원이 필요한 대사(大事)를 이루려고 하면서 대구는 너무 쉽게 기대하고 포기 또한 너무 쉽게 한다"고 꼬집는다.

이것이 바로 경쟁력 없는 대구의 본모습이고 30여년 권력이란 온실에서 자란 결과란 자성도 나온다.

그러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대구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확신에서다.

한국지하철공사법을 대표 발의한 박승국 의원은 "지켜봐 달라"고 말한다.

다만 법만 만든다고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곧 공청회를 갖고 법안을 본격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구시민에게 아쉬워하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의 효과를 대구시민들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역출신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구현안에 대한 시민 합의가 없는 탓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말이 달라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필요한 것은 대구시와 정치권과 시민이 손발을 맞추는 일이다.

당사자인 대구시가 정치권에 맡겨놓고 뒷짐져서는 될 일도 안될지 모른다.

대구시는 지금이라도 전문가를 모아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필요하다면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와 '작전회의'라도 해야 한다.

조해녕 대구시장의 역할은 더 크다.

시민에게 당위성을 알리고, 부산, 광주, 대전, 인천시장과 만나 협조를 구해야 하며, 여야 구분없이 주요 인사를 만나 호소해야 한다.

그래야만 '2조원 지하철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지하철에 관심있는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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