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아내의 이미지

입력 2003-05-17 09: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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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듯 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 마치 멀리 보이는 등대불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날은 모 공연의 쫑파티 날이었다.

후배의 친구라고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후배도 같이 출연해서인지 자연스럽게 참석하게 된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일까.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나도 모르게 자꾸 술을 권했다.

아내는 전혀 술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하여간 그 환한 얼굴에,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해 나는 무조건 프로포즈를 한 것이었으리라.

세월이 지나 그 환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하도 고생을 시켜 남은 상처와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 있지만 지금도 생긋 웃을 때면 20대 청춘의 그 이미지가 슬쩍 엿보이곤 한다.

이렇듯 사람은 사람 자체보다는 어떤 이미지에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모 톱스타 탤런트가 선전하는 냉장고를 사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까.

연극도 어쩌면 이미지 관리가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 내지는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쁜 이미지일수록 더욱 그렇다.

배우 자신에게는 한번의 실수이지만, 관객들은 계속적으로 그 배우에 대해 불신감을 갖게 되는 게 보통이다.

현대의 삶이란 이렇게 이미지 관리가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어느 사회학자의 말대로 이미지를 먹고 사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는 내 첫인상이 너무 안 좋았다고 했다.

하긴 수염도 거칠고, 말도 거치니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는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 보였다고 한다.

사람의 이미지라는 것은 때로는 허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에서 접하는 이미지의 실상과 허상은 무엇일까.

그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바로 연극이다.

인생의 본질을 배우라는 매개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극! 바로 여기에 연극의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여태껏 내가 연극하는 것에 대해 별로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본 그 등대불의 이미지만 아내의 얼굴에 어른거린다.

아내의 경우만은 내가 믿은 이미지 그대로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미지를 먹고 사는 사회로 출근할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그 환한 얼굴로 나의 방문을 두드린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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