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화물연대 승리로 끝난 물류대란

입력 2003-05-16 11:52:45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나섰던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운송제도 개선을 통한 적정수익 보장요구가 정부와 화주 및 운송사측의 '대폭 수용'이라는 형태로 결말났다. 노조와 정부간 세부안 협상과 일부 지역 화물연대의 운송료 인상폭 결정이라는 절차가 남기는 했지만 이번 투쟁은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던 지입차주들의 승리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정부는 15일 협상에서 7월로 예정된 경유세중 교통세 인하상분을 전액 보전해주고 도로비 할인 시간대 연장, 화물전용 휴게소 정비, 다단계 근절 및 지입체 정비 등 대부분의 요구안에 대해 개선을 약속했다.

또 약속사안 가운데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부분도 많고 업계 상호간 상충되는 문제들도 있어 갈등이 재연될 소지는 많다.

또 이번 사태의 해결책을 보면서 '형평성'을 내세워 투쟁의지를 다지는 유사사례 발생 가능성이 벌써부터 나타나는 등 정부의 잣대없는 현안처리 방법은 새로운 문제로 대두했다.

무엇보다 택시, 버스업계도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택시업계는 7월 1일부터 LPG부탄에 붙는 세금이 ℓ당 203원에서 323원으로 인상되는 데 따라 재정적 압박이 가중되고 버스업계도 경유세 인상으로 인해 부담이 커져 양 업계도 화물연대와 마찬가지의 집단행동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택시의 경우 95년부터 부가가치세 납부세액의 50%를 감면해주고 있으며 버스는 중앙 및 지방정부로부터 경영개선 및 구조조정자금을 지원받고 있어 추가 혜택을 주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단 화물차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정부가 택시업계, 버스업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장기적인 에너지세율 개편계획이 또다시 변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 '다단계'=현재 국내 육상물류 운송은 사회적으로 문제는 피라미드 판매와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화주에게서 출하된 화물은 대형 운송사를 통해 알선업체로 넘어가고 여기서 알선업체를 포함해 보통 3∼4단계의 지입차주 손을 거친뒤 최종 수요가에게 전달된다.

이런 일련의 운송체계를 거치면서 100%에서 출발한 운송료는 매단계에서 3∼7%의 수수료 및 마진율을 떼이고 어음결제 과정에서 발행하는 할인수수료까지 공제당한 뒤 정작 화물을 실어 나른 최종 운수업자(대부분 지입차주)는 60∼65%밖에 챙기지 못하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노조측과 지입차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정부측을 향해 이같은 다단계 구조 근절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15일 협상에서 즉시 실태조사를 벌여 단속을 강화하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개선약속을 했다. 지입차주들의 요구가 전폭적으로 수용됐다.

◇지입제와 업계 내부의 과당경쟁=운송하역노조가 대정부 협상에서 요구한 지입제 철폐는 정부가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선에서 협상을 봤다. 지입제는 차량 소유자(지입차주, 주로 화물연대 구성원)가 화물업체 명의로 차량을 등록한 뒤 업체측에 지입료를 내고 화물을 받아 수송하는 형태가 많다.

이론상으로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운송사들이 자기차량 보유대수를 늘리면 되는 것이다. 다단계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운송사에 그러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데다 물동량 증가 폭보다 화물차 댓수증가가 많아, 다단계와 지입제는 차주들간 경쟁강화에서 비롯된 구조적인고 내부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어 정부가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말처럼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내내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이하고 때늦은 정부의 대응=지입차주들이 들고 일어선 이유는 간단하다. 1억원 대의 차량을 투자하고 밤낮없이 거리를 질주하는데도 적당한 수익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 따라서 적정 수익만 보장되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 과정에 정부의 역할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게 화물연대측 주장이다. 운송료는 10년째 제자리인데 경유가는 2배로 올랐고 고속도로 통행료, 일반 물가 등 제반 경비 증가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지원 및 보전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를 정부는 내내 묵살하거나 외면했다. 운전기사들의 실력행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2일 포항에서 포스코를 비롯한 각종 국가기간 산업체의 출입문이 봉쇄당하고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물류 마비가 닷새 넘게 계속되는데도 현황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부처간 관할권 다툼만 계속했다.

프로 운전기사들에게 아마추어 행정가들의 대응은 처음부터 파국을 예견케 했던 것이다.

운송하역노조와 정부가 추후 협상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했으나 건교부, 산자부, 재경부, 노동부 등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문제에 대한 결집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만들어낸 '관란(官亂)'이었다.

◇산업계 피해=무역협회는 15일 이번 물류대란에 따른 산업계 전체 피해액을 5억4천만달러에 이른다는 집계치를 내놓았다. 타이어.가전 업계를 주요 타격업체라고 밝혔으나 피해를 보지 않은 업종이 거의 없다.

포항공단 한 업체 대표는 "특정 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KOREA'라는 상표 전체의 대외 신뢰도 및 신인도 추락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가장 큰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없이 물류를 세워버린 지입차주들도 문제였고, 이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의 행정력과 공권력, 이런 구조를 방치하는 한편으로 일시적인 열매의 달콤함에만 빠져 있었던 화주와 운송업체 등 모두에게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양비론을 넘은 전비론(全非論)이 비등하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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