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소리없는 소리

입력 2003-05-16 11:56:31

소리가 넘쳐난다.

이익집단의 크고 작은 소리. 나를 몰라준다고 악다구니 하는 소리. 상대방에게 뒤질세라 맞받아치는 소리. 여기에 인터넷의 목소리까지 합치면 과히 소리세상이라 할 만하다.

온갖 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요즈음, 문화부에 온 책 중 유달리 눈길을 끄는 책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열반하신 서암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소리없는 소리'라는 책이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말만 남기고 입적해 세간의 화제가 됐던 서암스님의 책이다.

이 책이 유독 마음을 잡아 끈 것은 경쟁적으로 소리내기를 해대는 세상에 묻혀져 버리기 쉬운 소리 없는 소리의 무게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침묵의 소리가 갖는 울림

스님이 봉화토굴 마당에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 한 신도가 "스님 좋은 법문 좀 해주세요" 라고 말하자 스님은 " 좋은 법문이 따로 있나. 소리 있는 소리만 들으려 하지말고 소리 없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한다"라며 이 책은 시작한다.

스님의 이 말씀은 들리는 소리가 소리의 전부가 아님을 경계하는 말 일터다.

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지혜를 가져달라는 당부의 이야기도 포함돼 있겠다.

유달리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소리가 아우성 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압도하는 세상, 악을 쓰며 우는 집단이기주의 사회, 언변 좋은 소수의 사람이 침묵하는 다수를 윽박지르는 사회,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인터넷으로 인신공격과 상소리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회…. 큰 소리에 밀려 작은 소리가 점점 묻혀져 버리는 세상에 스님은 침묵의 소리가 가지는 큰 울림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모두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가정의 붕괴도 '들리는 소리'만 들으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들리지 않는 상대방의 고통을 들을 수만 있다면 가족간의 오해와 갈등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내의 잔소리가, 남편의 무뚝뚝한 말이 그들 마음의 전부가 아니듯 사춘기 자녀의 울걱한 말이 부모님의 '별일없제'라며 급히 끊는 전화내용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들리는 소리가 소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별일없제' 라며 급히 끊는 부모님의 전화에서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수많은 말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가정을 위해 자존심마저 버려야하는 가장의 힘겨운 소리를 아내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아내의 발걸음에서 힘들게 가정을 꾸려가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무거운 소리를 남편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이 피는지 꽃이 지는지 조차 모른 채, 하루종일 학교에 갇혀 있는 자녀들의 멍든 마음을 부모들은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가족은 위로 받고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마음과 따뜻한 귀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인양 듣고 행동할 때 서로에 대한 갈등과 불신은 해결될 수 없다.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깊고 조용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를 공론화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조화로운 사회 열린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이 혼재하는 경쟁적 다원화 사회가 됐다.

이들 구성원이 내세우는 가치는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입장에선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입장에서 보면 아집이나 편견이 부지기수다.

목소리 큰 몇몇 단체나 개인의 의견이 전체인양 오인되는 사회는 다원화 된 사회, 제 모습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간소한 삶을 강조하고 있는 법정스님이 얼마전 TV에 출연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자연에 있으면 사람의 말이 얼마나 시시해 지는가를 알게된다고- . 큰 소리만 소리의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우리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따뜻한 귀가 있으면 말이다.

김순재(문화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