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생명기반...2020년 우리나라 모습은

입력 2003-05-16 10:00:17

우리나라 정책의 단기 미래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해, 2020년. 우리는 2020년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지난 1980년대 인기 드라마에 등장했었던 '키트'같은 최첨단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있을까. 아니면 차가운 방안에서 굶고 있는 자식들을 보며 눈물짓고 있을까.

누구나 풍요롭고 살기좋은 세상을 기대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명기반 파괴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2020년엔 이미 석유가 부족, 가격 폭등과 함께 기름 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 석유 부족 사태의 여파가 미칠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또 농경지 파괴와 쌀 수입 개방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 비싼 돈을 주고 쌀을 전량 수입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때쯤되면 인구도 현재보다 20% 정도 늘어나 에너지 및 식량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삶의 질'보다 '원초적인 생존'에 급급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우려섞인 경고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먼 미래나 딴나라 얘기가 아니다.

불과 10여년 뒤에 겪게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생명기반 몰락에 대해 아직 무신경한 것 같다.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 및 농촌 살리기 등 생명기반 회복을 위한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석유 고갈

석유량 부족에 따른 기름값 폭등이 우려되고 있다.

기름을 구하지 못해 산업 전선의 기계들이 멈추고 시원하게 뚫린 대로엔 몇몇 부유층의 차들만이 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5년내 세계 석유생산이 최고점을 지나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산유량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2020년엔 지난 1970년대와 비슷한 수준, 2050년대엔 현재의 20%선으로 급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채굴 가능한 석유의 총량도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인 석유자원 분석가인 캠벨에 따르면 세계 채굴가능 석유 총량은 1조8천억배럴. 이중 절반인 9천억배럴을 지난해까지 이미 뽑아낸 것으로 보고 있다.

심해 및 극지방 석유 등 지구상의 석유 채굴 가능량의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2008년 이전엔 석유 매장량의 절반이상이 채굴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대규모 유전의 추가 발견은 이제 거의 없다.

지난 60년대엔 연간 400억배럴 정도 규모의 유전들이 새로 발견됐지만 현재는 60억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석유 소비량은 급속하게 증가만 하고 있다.

석유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해마다 산유량이 2% 정도씩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예측이 맞다면 지난 두차례 발생한 적이 있는 오일쇼크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 우려된다.

73년 1차 오일쇼크때 석유는 배럴당 1.8달러에서 11.65달러로 치솟았고, 79년 2차 오일쇼크땐 배럴당 13달러에서 34달러로 급등했다.

또 2000년 OPEC가 하루 산유량을 100만배럴 줄이려하자 석유는 18달러에서 35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세계시장을 공황상태로 내몰았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석유의존도는 50%나 된다.

그러나 아직 이를 극복할 만한 에너지 절약 대책이나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국민소득이 3배가 넘는 일본·독일보다 많다.

유럽연합은 최근들어 이러한 에너지 대란에 대비, 석유·화석연료·원자력 등의 에너지원 의존비율을 줄이고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원 사용을 2010년까지 12%로 끌어올리는 단기적 정책을 수립했다.

독일, 영국 등은 2050년까지 장기계획을 세워 에너지 소비량을 현재의 50~60% 수준으로 낮추고, 이중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을 60%까지 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에너지 대책까지 마련했다.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란 책을 펴낸 한국방송통신대 이필렬(에너지대안센터 이사)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개발이 많이 늦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원자력 의존율을 높이고 석유·가스 등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겠다는 정부의 에너지 대책으론 닥쳐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 및 소비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라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 특성상 석유 고갈 사태가 벌어지면 일시적이나마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태양에너지, 풍력 등 자체 기술 개발을 서둘러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률을 2006년 3%, 2011년 5%까지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생명기반 파괴

우리 '먹을거리'인 쌀 생산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농경지와 산림 파괴가 해마다 계속되면서 산림의 경우 해마다 40~250㎢, 농경지도 전체 농지의 0.5~1% 정도인 100~220㎢가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대구면적의 30% 정도가 매년 도로 등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999년 정부는 2020년까지 현재보다 3.2배 정도 도로를 더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한 국토종합개발 계획까지 수립했다.

우리나라가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세운 그해 일본은 이전의 개발중시노선이던 국토종합개발법을 사실상 폐기하고 환경보전과 기존 기반시설 활용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었다.

또 농경지 파괴와 함께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농민 수는 이미 전체 인구의 7% 정도로 크게 준데다 조만간 쌀 시장까지 완전 개방되면 5년내 1% 이내로 급감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에 따라 농산물 생산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곡물 생산의 급격한 감소 및 수입 의존 구조로 급변, 20%대에 불과한 양곡자급률이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현재도 쌀을 제외한 곡물의 90%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인데다 올해 22만t의 쌀 수입을 비롯 2004년엔 농업협상 결과에 따라 시장이 완전히 개방될 것으로 보여 쌀 생산 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높은 실정이다.

'부르는데로' 값을 지불하고 '주는데로' 먹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대구 한 살림 천규석 대표는 "공장·도로 하나 더 만드는데만 신경을 쓰고 농촌 살리기엔 뒷전이면 머지않아 닥칠 석유전쟁 이후 식량전쟁 시대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국회도, 시민단체들도 우리 쌀과 농촌을 지키려는 관심과 의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WTO체제를 인정한다하더라도 직불제 등 보상금제를 강화,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생명기반의 마지막 보루인 생명안보산업을 절대 포기해선 안되고, 비상시를 대비해서라도 정책적으로 농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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