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꾸러기, 심술꾸러기, 장난꾸러기, 욕심꾸러기 등에서의 '꾸러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람을 뜻하는 어근 '굴'에다 '억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나중에 꾸러기가 되었다.
멍텅구리의 '구리'도 어근 '굴'과 연결된다.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꾸러기'와 '구리'는 용법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꾸러기는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구리는 어린이·어른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우리 어법상 어른들에게 꾸러기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요즘 더러 사용되는 '꼴통'이란 단어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꼴통은 '말썽꾸러기의 변말'로 적고 있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꼴통은 말썽스럽지만 귀여운 느낌을 주는 단어다.
그러나 실제 사용되는 꼴통은 '생각이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제불능의 인간' 정도의 욕을 담고 있다.
급진적 성향의 사람들이 보수를 비판하거나 욕할 때 최악의 강도로 쓰는 단어다.
그들의 어법은 보수, 수구, 수구 반동, 수구 꼴통으로 단계를 나누는 듯하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를 구성하는 상호보완적 이념이다.
보수는 자기가 익숙한 것에 집착하여 현상을 고집하는 속성이고, 진보는 현상의 변화를 바라는 속성이다.
보수는 인간의 이성보다 기존체제에 대한 믿음이 더 큰 반면, 진보는 합리적인 인간의 이성에 대해 더 큰 신뢰를 보낸다.
전자가 현실 지향적이라면 후자는 미래 지향적이다.
여기서 보듯 보수와 진보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같은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 운영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것은 사회적인 당위다.
급진과 반동만이 경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상대부정의 어법 '꼴통'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보수·진보의 대립을 지켜보면 이런 원론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혐오의 표현이 함부로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꼴통이 그 하나의 예다.
공존을 거부하고,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의지가 읽혀진다.
그것은 상생의 관계를 허무는 난폭한 언어 구사다.
스스로에게 '꼴통'이라고 말해보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어떤 연예인의 말도 그 연장선상이다.
"종자가 다르다"는 말속에 숨어 있는 뜻은 상대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냉소주의, 배타성, 폐쇄성이 동시에 감지된다.
상대 부정의 어법보다 더 난처한 문제가 논리와 방법론의 빈곤이다.
보수는 기존체제의 유지에 관심이 많은 만큼 사회의 틀을 바꾸는 논의를 생산해 내는데 소극적이다.
우리 사회의 실제가 그래왔다.
바뀐 시대에 맞는 화두를 개발해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해온 게 보수의 현실이다.
대통령 선거의 패배도 21세기의 보수적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래서 진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새로운 논의와 실천방안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했다.
과연 그렇게 된 것일까.
보수든 진보든 사회의 지배적 경향이 되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그것이 왜 필요하며, 어떤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또 국민 총의를 이끌어낼 실천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참여정부는 이 점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확고한 가치의 제시도 미흡하려니와 가치의 실행에서 시행착오와 혼란이 연속되고 있다.
판단이 이르긴 하지만 보수정권 때보다 나을 게 있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미관계를 포함한 안보문제 등에서의 보수화는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노동계나 전교조와의 대면에서 생산적·긍정적 접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보수·진보의 대립은 정치적 패싸움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보수다운 보수도, 진보다운 진보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생산적 상호관계가 정립되겠느냐는 말이다.
대책 없이 세월만 죽이고 있는 보수와 맹목적인 추종과 지지를 요구하는 진보가 와글거릴 뿐이다.
종자니 꼴통이니 하는 말들은 그 부산물이다.
실체도 분명치 않은 논의에 한국사회 전체가 최면에 걸린 듯, 마취된 듯 끌려들고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다.
한 쪽은 중의 상투를 잡고, 한 쪽은 고자의 남근을 쥐고 싸우는 꼴이다.
◈논리자체에 함몰돼선 안돼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보수·진보의 논의가 아니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좌파정권이 우파정책을 끌어다 쓰는 게 오늘날 지구촌 현실이다.
국가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정책기조의 이념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보수 정책이든, 진보 정책이든 결과만 좋으면 그것이 답이다.
그런 유연성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국제현실이다.
안보에서 미국이 우리의 뒷덜미를 잡고 있고, 경제에서는 세계 각국이 우리의 경쟁력 와해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화두는 이런 치명적 외부요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보수와 진보는 이들 국가현안에 대해 상대보다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보수가 진보를, 진보가 보수를 주장하는 어긋남도 필요하다.
그런 해법의 제시가 아닌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틀 그 자체에 함몰돼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유치한 상대부정의 패싸움이라면 국가를 위해 백해무익하다.
없는 보수와 아닌 진보의 툭탁거림 속에 나라의 속병만 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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