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대한 미련은 일단 접었습네다.
잘 나가던 축구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버려야 하지만 언젠가는...".
전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윤명찬(56)씨가 최근 대구 이천동에 50평 크기의 '평양 단고기 전문점'을 열었다.
10년 전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지역예선 당시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날렸던 그가 남한으로 넘어온 뒤 축구에의 미련을 접고 새로운 인생 살이에 나선 것.
"한국에 와서도 경험을 살려 프로축구팀 감독을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네다만 그게 잘못인 것 같습네다".
윤씨는 만 4년 전 귀순한 뒤 한동안 프로축구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년6개월 뒤 그만뒀다.
'북한 출신'이라는 주위의 눈총을 견디기 힘들었다.
남한 축구계의 얽히고설킨 인맥·학맥 때문이었다.
평양 출신인 윤씨는 16세 때 프로팀 격인 '2·8팀' 체육단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축구 재능이 뛰어났다.
1968년부터 9년 동안 북한 대표팀의 리베로로 활약했고, 1990∼94년 사이에는 종합체육단 축구단장 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0년 열린 남북 통일축구 대회 때는 북한팀을 이끌고 서울을 찾기도 했다.
윤씨가 망명을 생각한 것은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지역에선 성적 부진(1승3패)의 책임을 지고 평양체육기구 공장 노동자로 전락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때문. 1998년 7월 탈북해 중국 지린성에서 7개월 간 숨어지내다 1999년 4월 입국했다.
이렇게 축구밖에 모르던 윤씨가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단고기 전문집'. 보신탕집이었다.
평양의 유명한 단고기집 주방장이던 장모로부터 배웠다는 조리법을 밥벌이에 쓰기로 한 것.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월이었다.
함께 탈북했던 동포가 "점포세나 물가가 서울보다 싸다"고 권한 것이 인연. 상인동에 25평 짜리 점포를 얻어 단고기집을 열었다가 "규모를 키워 동업하자"는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달 9일 이천동에서 확장 개업했다.
윤씨는 요즘 어느 때보다 바쁘다고 했다.
점심 때부터 몰려드는 손님들 시중 들고 문을 닫을 때쯤이면 녹초가 된다.
"대구 사람들이 점잖고 성실해 무척 마음에 듭니다.
대구를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윤씨는 그래도 축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여력이 생기면 유소년 축구에 애정을 쏟아 볼 생각이라고 했다.
어린 선수를 잘 육성해야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아지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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