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詩人들의 요절

입력 2003-05-12 11:48:17

'신은 재능이 많은 사람을 일찍 자기 곁으로 데려간다'고 했던가. 요절한 문인.예술가들은 그래서 '짧은 인생, 긴 여운'을 남기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장수를 꿈꾸며 살아간다.

'성공과 행복을 적당히 누리면서 장수하는 것'과 '짜릿한 행복, 커다란 성공 뒤에 요절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도 전자를 택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강렬한 인생'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건 인생의 길이보다 그 인생이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리라.

▲시 전문지 '시인세계'(여름호)가 요절 시인 다섯명의 특집을 마련했다.

1980년대에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지독한 음주로 세상을 떠난 박정만(1946~88), 9년여의 수감생활 뒤에 타계한 저항시인 김남주(1946~94),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한 고정희(1948~91) 등 40대 작고 시인들과 29세의 돌연한 죽음이 아직 의문에 싸여 있는 기형도(1960~89), 34세에 세상을 등진 진이정(1959~93)을 다뤘다.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학평론가 정효구씨의 요약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고정희에 대해서는 '역사와의 대결에서 실족한 비극'으로, 기형도를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질식한 생', 김남주를 '이상주의자가 받은 형벌', 박정만을 '정치적 폭력에 짓밟힌 개인', 진이정을 '허무로부터 벗어나는 길'로 정의하고 있다.

그 빛깔은 서로 다르지만 한결같이 열정적이었으나 비극적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가까이 지냈던 문인들이 되돌아본 글들 가운데 특히 박정만이 대낮부터 술잔을 돌리다 '봄볕이 시인 먹으라고 하늘에서 뿌리는 청산가리라며 소주에 타 마시고 스스로 청산가리나 되자'(김영석)고 했다는 일화, 기형도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로 벌어졌던 난투극 이야기(하재봉), '아무리 힘센 거인이라도 땅에서 발이 떨어졌을 땐 힘없이 넘어지게 마련'이라는 김남주의 교도소 출소 인터뷰 얘기(김준태) 등은 아픔의 메시지들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미국 학자는 온갖 고생 끝에 일찍 끝을 맺는 인생을 '제임스 딘 효과', 그보다 덜한 고생으로 더 오래 사는 인생을 '솔제니친 효과'라고 이름을 붙인 바 있지만, 예사롭게 들리는 말은 아닌 듯 싶다.

모든 생명은 소멸하게 마련이며,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자 그림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명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겹겹이 싸인 눈꺼풀 속에서/아무도 모르는 잠이 되는 기쁨이여'가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건 무엇 때문인가. 요절한 시인들의 격렬하고 허무로 찼던 짧은 삶과 죽음이 새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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