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호주제 폐지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부 차원의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이 구성되고, 이달 중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민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호주 관련 규정 전면 삭제, 부가(父家) 입적 강제 규정 삭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호주제는 그 동안 헌법에 보장된 양성평등 원칙에 어긋나고 가족의 성 선택권 유보로 국제 신뢰를 떨어뜨려 왔다는 비난을 여성계 등으로부터 받아 왔다. 반면 유림을 중심으로 한 폐지 반대 세력도 강력한 실정이다.
◇논의, 어떻게 진행돼 왔나
1962년에 제정된 민법 제4편(친족) 호주제 규정은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토록 했고, 그 절차법으로 호적법이 마련됐다. 호주를 기준으로 하나의 호적에 가족 모두의 출생.혼인.사망.입양 등 신분 변동사항이 기재되고 그 지위가 명시되도록 한 것.
민법 제정 후 여성계는 호주인 남성을 중심으로 가족관계가 구성됨으로써 여성이 성차별을 받는다며 양성이 동등한 가족관계 규정을 요구해 왔다. 우리나라는 'UN 여성차별 철폐협약'을 1984년 비준하면서 가족의 성 선택권 규정만 유보시킴으로써 국제적으로도 "가부장적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세계 유일의 호주제를 고집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여성계 등의 끈질긴 변화 요구로 1990년 1월엔 관련 민법 조문이 개정됐다. 이때 친가.처가 모두 8촌까지 친족으로 규정하고, 자녀 균등 상속을 보장하며, 자녀 양육권의 아버지 독점 제한 및 법정 결정 제도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핵심인 호주제 폐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호주제 자체에 대한 폐지 운동의 서막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이 1997년 3월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성과 이름 사이에 어머니의 성을 끼워 넣는 형태로 부모 양성을 함께 쓰도록 한 것. 여연은 2000년에 호주제 폐지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설정, 범국민 서명운동, 캠페인, 사이버 운동 등을 시작했다.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도 2000년 10월 서울지법 서부.남부.북부지원에 호주제의 위헌심판 제청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따라 법원은 2001년 4월 호주제의 위헌성을 인정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 심판을 요청하는 위헌심판 제청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를 아직도 심의 중이다.
◇여전히 팽팽히 맞선 주장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호주제는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해 가족 순위를 강제적.일률적으로 매김으로써 평등한 공동체 형성을 불가능케 한다. 이로써 헌법 전문 및 제4조가 보장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또 남성에게 호주가 될 우선권을 부여해 아내.어머니의 지위를 남편.아버지보다 아래에 있게 함으로써 남녀 차별을 초래한다. 이는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가계를 잇도록 함으로써 남성에게도 결코 이롭지 못하다.
부작용 역시 많아, 호주 승계, 결혼 후 신분 등록, 혼외 자녀 입적, 이혼가정 자녀의 호적.성, 미혼모 자녀의 호적 설정, 상속, 재산권 행사 등에서 여성 차별 등을 초래한다. 더우기 호주제는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일제 구민법상 호주제의 영향을 받은 외래적인 것이다.
그러나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인다. 그들에 따르면 가정이란 천륜으로 이어지는 부자와 조손(祖孫) 관계로 형성된다. 이를 인위적인 법으로 평등하게 할 수는 없다. 평등을 도입한 미국에서는 많은 가정이 파괴돼 청소년 범죄, 노인 소외 등 사회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더우기 1990년의 민법 개정으로 호주의 권한이 상당폭 폐지됐다. 그 후 호주는 호적 기재의 기준으로만 역할하는 형식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주를 전통적인 가(家)의 상징이며 호적 편성의 기준되는 존재로 존속시키고, 필요하다면 보완하는 정도의 조치가 타당하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유럽.미국에는 우리나라 같은 호와 적의 개념이 없다. 친족(가족)을 기록하는 신분기록 제도 자체가 없다. 개인의 출생.사망.혼인 등 신분 변동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공부만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1947년 민법을 개정해 호주제와 호적제를 폐지했다. 대신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호적을 만들었다. 부부는 혼인으로 하나의 성을 정하도록 하고, 이 성을 기준으로 해 부부와 동일한 성을 칭하는 자녀로 가를 편제했다. 혼인한 자녀는 새 호적을 갖도록 하면서 3대 호적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부부 동성제도를 채택하고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또다른 여성차별 시비를 낳고 있다.
◇논의되고 있는 대안
현재 호주제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가족부제 △1인1적제 △주민등록제도 수정.보완 등 크게 3가지이다.
가족부 안은 혼인으로 부부 호적을 편제하되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남편이나 아내 중 한 명이 가족의 대표가 되도록 한다. 자녀는 부모의 호적에 입적하되 혼인하면 배우자와 함께 새 호적을 갖는다. 부모의 혼인이 무효.취소될 경우 자녀 중 미성년은 부나 모의 호적에, 성년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호적을 선택토록 한다. 이 제도에서 여성 차별은 없지만 가족별 편제로 사실혼 가족, 혼인외 자녀, 재혼가족 등은 차별을 받게 되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돼 있다.
1인1적제는 개인 각자에게 호적을 주는 방식이다. 출생 후 모든 신분 변동이 개인 중심으로 기록된다. 혼인.이혼.출생 등이 발생해도 다른 사람과 결합되지 않는다. 친족 사항은 부모.배우자.자녀만 간단히 기록하고 형제는 기록하지 않는다. 이 제도는 어떤 차별도 없애는 편제 방식으로 평가되나, 호적 수를 인구 수에 따라 4천만개 이상 만들어야 해 국가가 부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주민등록제 수정.보완 방식은 호적제.주민등록제로 이원화돼 있는 국민 기록제도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개인정보 침해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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