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 보성초교 교장 자살사건 이후 교단 갈등이 표면화한 가운데 전교조가 교장선출보직제 추진본부를 출범, 교육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돼온 교원 승진 제도가 교사와 교장 사이의 원활한 협조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 점수따기와 승진 경쟁을 부추기는 등 학교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 승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전교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평교사들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학교의 책임자를 인기투표식 선거로 뽑는 데 따르는 문제점, 현 교장.교감들의 반발과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교사들의 저항 등 부작용이 만만찮아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태다.
▲현행 승진제도의 문제=현재의 교원 승진제도 아래에서 학교장이 되려면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교감 승진부터 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일정 기간의 근무 경력을 쌓아야 하는 것은 기본. 여기에 현장 연구 논문, 시범학교 연구 등을 통해 연구점수를 따야 하고, 부장 경력도 일정 기간 있어야 한다.
게다가 벽지근무 가산점, 특수학급 담임 가산점 등을 보태야 승진 후보군에 들 수 있다.
또 승진을 앞두고 학교장이 매기는 근무평정에서 '1등 수'를 받아야 한다.
1점도 안 되는 연구점수를 따기 위해 연구논문을 열심히 써야 하고 연구.시범학교 업무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육대학원도 다녀야 하고 이수점수를 잘 따기 위해 연수도 틈나는대로 받아야 한다.
부장 보직을 맡기 위해서는 교장, 교감의 눈밖에 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승진 문턱에서는 0.01점도 소중히 해야 한다.
소수점 한두자리에서 승진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또 교무나 연구부장을 맡기 위해 로비하고 근무평정을 잘 받기 위해 온갖 종류의 궂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벽지 가산점을 받기 위해 농어촌 근무를 자원해야 하며 가능하면 교육청 장학사가 돼 승진의 빠른 길도 찾아야 한다.
물론 연구하는 교사, 부장 교사, 벽지 근무 교사 모두가 승진에 눈먼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교사들 스스로도 이같은 과정들이 승진에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초등학교 교감은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며 "교장, 교감이나 장학사 같은 윗사람 눈치보느라 정작 학생과 학부모 눈치는 볼 틈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교장선출보직제란=점수와 근무 태도에 좌우되는 이같은 승진제도가 학교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승진 점수의 포로가 돼 학생들을 외면하거나 교사들간에 소모적인 경쟁을 벌이고 관리자들과 결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지 않는 한 자기 전문성을 위한 노력, 학생 학부모의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간단히 말해 학교장을 승진한 윗사람이 아닌 교사들의 보직 가운데 하나로 만들고 선거를 통해 뽑자는 이야기다.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고 교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전교조측은 자격 요건이나 선거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해당사자가 많은 만큼 충분한 토론을 통해 방법을 만들어 가자는 것. 전교조는 이달부터 연구조사사업, 교사 및 국민 대상 홍보, 공청회나 토론회 활성화 등에 들어가는 한편 국회, 교육부, 정당 등에 대해 법제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 대중집회 등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작용과 해법=전교조 대구지부 권영주 사무처장은 "교장선출보직제에 대한 공감대는 전교조 교사 뿐만 아니라 교총 소속 교사 등 대부분의 평교사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다"며 "어려움이 많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육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현행 승진제도에 문제가 많고 공감하는 여론이 높다 해도 교장선출보직제 실현에는 걸림돌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교장을 선거로 뽑을 때의 부작용이 제기된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벌어질 선거운동과 후보별 줄서기 등으로 인해 학교는 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고, 인기에 연연해야 하는 교장으로서는 소신 있는 학교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표를 확보하기 위해 평소 다른 교사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거나, 이로 인해 능력보다 인간관계가 우선된다거나, 승진 점수 못지 않게 표 따기를 위해서도 수업을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 등도 문제로 꼽힌다.
한 학교장은 "지금도 전교조 교사들 눈치 보느라 소신 있게 학교를 운영하기가 어려운데 선거로 교장을 뽑는다면 더욱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며 "어느 쪽이 과연 교육에 도움이 될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 교장.교감들의 기득권은 물론 승진이 임박한 교사들이 그동안 쌓아온 노력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도 어려운 과제다.
이에 대해 전교조측은 "충분히 인정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억울한 피해를 입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방법에 있어서도 많은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자격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 임기는 어떻게 하고 교감의 역할은 어떻게 하느냐, 학생과 학부모는 선거에 참여하느냐 등 풀어야 할 고리들이 적잖은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교육계 내부에서 대화의 분위기가 먼저 자리잡아야 원만한 해법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교단이 양분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칫 교장선출보직제가 또다른 교단 분열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실종된 대화와 토론 문화를 어떻게 되찾느냐가 교장선출보직제 추진의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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