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도 어린이가 순진무구하고 여리며, 그만큼 입맞춤의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부각된 건 근대 이후라 한다.
어린이를 위한 옷과 놀이 등이 따로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가족 그림의 한복판에 이들이 자리잡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산타클로스가 등장하고, 크리스마스가 어린이를 중심에 놓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됐다고는 할 수 없다.
어느 사학자는 어린이를 '근대의 제왕'이라고까지 표현한 적이 있지만, 그 미소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가장 윗자리에 놓이는 가치를 갖게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서양의 근대 문명이 일본에 들어오고, 그런 가치관이 함께 스며들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어린이를 위한 새바람이 일었다.
그 연륜도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다.
1922년 소파 방정환과 '색동회' 회원들이 앞장서서 '어린이 날'을 제정하게 됐다.
그 뒤 1957년에는 전문 9개항의 '어린이 헌장'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서구 여러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보호와 교육, 사랑을 퍼붓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보다 한 송이 들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은 소리 없이 피어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 꽃자리는 다시 열매와 씨를 성숙시키게 마련이다.
'과잉보호'라는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내 아이는 남달라야 한다'는 이기주의와 보상의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어린이는 진정 제대로 보호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의 부모들은 제 자식은 과잉보호하고 지나치게 귀하게 키우지만, 남의 자식이나 버려진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너무 관심이 없고 냉담한 건 아닐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나날이 '어린이 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태가 달라졌으나 그 알맹이도 과연 그런지는 회의적이다.
두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산수와 영어를 가르치는 '극성'의 나라는 아마도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상대적으로 더 짙은 그늘에 들고 있는 어린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는지…
▲지난해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여읜 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어머니마저 잃고, 할머니와 살아가는 영천의 엄수미(8) 난영(6) 동규(5) 어린이 3남매는 다시 맞이하는 '어린이 날'을 앞두고 안쓰럽기 그지없게 한다.
아직은 어려서 슬픔과 아픔의 무게를 제대로 모른다고 하더라도, 부쩍 달라지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니 더욱 그러하다.
이 해맑은 영혼들에게 따뜻한 가슴과 손길을 주는 사람들도 없지 않으나, 어린이는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어린이 헌장'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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