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때의 일이라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대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신혼 살림을 서울에 차렸다.
당시 남편이 서울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이 되면 서울로 올라갔고 방학때는 한 달 넘게 서울에 머물렀다.
아주 작은 시영아파트였다.
거기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요일이면 계단 물청소를 했는데 대부분 가정에서는 남자들이 나와서 했다.
우리 집 역시 남편이 나가서 청소했다.
그러다 남편이 전근오면서 이층집에 세를 얻어 살림을 대구로 옮겼다.
막상 이사해 보니 주택은 쓰레기 치우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매일 새벽마다 쓰레기차가 다녔는데 집집이 쓰레기통을 들고서 쓰레기차가 오는 곳까지 가지고 나와 쓰레기를 비워야 했다.
나는 이 일도 당연히 남편이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쓰레기 비우러 나갔다 온 남편이 몹시 멋쩍어 했다.
이유인 즉, 남자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남자라곤 쓰레기차 운전하는 청소부 아저씨말고는 없어서 다음부터는 창피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부터 임신한 몸으로 남편이 아래층까지 가져다 주는 쓰레기를 내가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분위기가 정말 나가 보니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계단 청소조차 모두 남자가 했는데 그 무거운 쓰레기통을 모두 여자들이 들고 와 버리다니.
우리 대구지역에서는 작년기준으로 중등학교 여교사가 5천명을 육박하는데 이는 전체 교사의 반에 가까운 수치이다.
그 중 관리직 여성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고등학교는 겨우 2%에 불과하다.
아니 조금 더 될지도 모르겠다.
한데 이 수치는 전국에서 꼴찌에 가까운 것이고 아마 여교수 수치를 조사해도 이 또한 전국에서 꼴찌 언저리일 것이다. 양성평등이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교직이 이러할진대 여타 직업은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몇년 전 일이다.
담임을 맡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는 집을 며칠이나 비워야 했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친정 어머니를 부른다.
아이들에게 엄마 없을 때 할 일을 적어 준다, 아이 아버지에게는 저녁에 일찍 퇴근하여 애들 보살피라고 당부를 한다든가,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이고 또 수학여행 가서 사고라도 나면 어쩔까 싶어 걱정도 되어 여행이라고 해도 별로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아래층 사람을 만났다.
내 옷차림을 보더니 '오늘은 출근하지 않으세요?' 라고 묻는다.
나는 '아이들과 수학여행 간다'고 했다.
대뜸 그 여인의 입에서 '어머 좋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보여요?' 라고 하니 그는 '놀러 가니 얼마나 좋아요?' 라고 했다.
놀러 간다? 나는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남자에게는 일하러 가는 것이 직업이 되고 여자에게는 일하러 가는 것이 육아를 피해서 놀러가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지금까지 여성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었다.
그러니 그 직업에서 능력 발휘가 되겠는가. 그러니 자아 성취욕이 높은 젊은 직장여성들이 결혼을 하려 하겠으며 힘들게 아이를 둘씩 셋씩 낳으려 하겠는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남자나 여자나 가릴 것 없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키워야 지역도 경쟁력을 획득하게 된다.
고급 인력이 단지 육아의 부담 때문에 재주를 사장시키는 것은 지역 경제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는 대구 지역에서 여성 벤처 기업인이 더 많이 나오고 IT 분야에서도 신출귀몰한 여성 재주꾼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그러려면 대구 남자들이 좀 바뀌어야 한다.
직장의 분위기가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
여자 밀어내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21세기를 앞서가기 어렵다.
여자의 감성을 활용해야 한다.
머슴아가 뭐 구질구질하게 요리나 하고 설거지나 하나 하는 생각 대신에 물리적 힘이 딸리는 여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어보자.
여성폄하와 양성 불균형은 전국적인 문제 아니 세계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내가 달구벌 지역 사람이니까 특히 달구벌 지역에 한정하여 얘기한 것이다.
이제는 많이 달라지는 추세이지만 더 빨리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
일하는 여성들을 귀하게 생각하자. 대구 여성들의 강인함과 고집스러움과 빼어난 감성은 이 지역의 자산임을 인식하자.
석귀화 경북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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