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대구와 양성자 가속기

입력 2003-05-02 11:51:13

지난 96년 9월 대구에서는 대규모 정부 성토 궐기대회가 열렸다.

95년부터 지역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위천국가산업단지 지정을 촉구하는 행사였다.

당시 집권 여당으로 입장이 난처했던 신한국당만 불참했을 뿐 전 시민의 역량이 총집결된 이벤트였다.

하지만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이 궐기대회는 문민정부 즉 김영삼 대통령 집권 이후 소외감을 느껴오던 대구사람들의 울분이 위천이라는 문제에 결부돼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일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뻔질나게 범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서울로 대정부, 대국회 로비를 위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위천문제는 지금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위천문제가 제기된 지 9년째다.

그동안 대구는 위천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진이 빠질 정도로. 그러는 사이 대구는 제3의 도시에서 제4의 도시로, 그리고 경제력에서는 제4를 넘어 제 5, 제6의 도시를 눈 앞에 두게 됐다.

그리고 올들어 대구는 양성자 가속기라는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대구의 품에 안길 듯하던 이 사업도 핵폐기물처리장과 연계한다는 복병을 만나 암초에 걸린 상태다.

청와대나 정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게 이 고비를 넘길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다시 대구사람들은 범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궐기대회를 하려고 한다.

9년전의 상황이 되풀이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1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법적대응과 함께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 가속기 유치를 위한 대시민 서명운동과 궐기대회도 추진하기로 했다.

대정부 항의방문단도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바라보는 기자의 마음은 위천문제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대책도 없이 고함이나 지르고 보자는 것인지, 단계적인 후속 대응책이나 마련해 놓고 행동에 들어서자는 것인지, 위천 때처럼 시민들의 진만 빼놓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철저한 지역이기주의로 비치지는 않을지, 또 경제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만 다뤄지지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이다.

대구시민들의 지혜와 역량을 모으고 가장 바른 길로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이동관 정치1부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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