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전염병 사스(SARS)공포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10% 안팎의 높은 치사율, 공기 등을 통한 무차별적 전염, 거기다 백신조차 미완성인 괴질앞에 속수무책인 21세기 지구인의 무력함을 보면서 기도하나로 페스트를 물리친 '오바 옴마가우'라는 독일의 조그만 시골마을의 기적을 떠올리게 된다.
15세기 전후 유럽전역을 휩쓸며 2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페스트가 창궐했을때 유일하게 한마을 전체 주민중 단한명의 환자도 생겨나지 않았다는 옴마가우.
불과 인구 몇천명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 기적은 신앙적 교훈과 함께 집단의 단합된 염원이 얼마나 큰 염력(念力)을 나타내는가를 일깨워준다.
옴마가우 마을 주민들이 하느님에게 약속한 서원(誓願)은 '이 마을에 페스트가 침범하지 않게 해주시면 마을이 존속하는 날까지 영원히 매 10년마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마을 연극제를 열겠다'는 서약이었다.
배우들은 모두가 마을 주민들. 의사·목수·요리사 등이 예수나 성모 마리아, 빌라도 총독, 12제자 등으로 분장, 공연을 일년전부터 각자의 생업을 팽개치다시피해두고 공연연습을 한다.
마을에는 초대형 야외 공연장 세트가 세워져있고 수백명의 엑스트라 출연진(주민)이 무보수로 등장한다.
옴마가우의 예수수난 연극제(파시옹슈필)는 전세계에서 50여만명의 관객이 몰린다.
좌석 예약은 최소한 3~5년전에 거의 끝날 정도다.
아마추어 주민 배우들이 꾸민 연극제가 세계적인 예술무대로 인정받은데는 기적과 연관한 종교역사적 줄거리도 한몫 했겠지만 무엇보다 배역 선정의 공정성과 뽑힌 배역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감동을 사고 있다.
배역은 주민들 중 용모나 체격 등 캐릭터가 가장 극 중 배역과 잘 닮은 사람 중에서 뽑는다.
오직 수난연극축제의 전통과 예술성을 높이는데 누가 적합한 배역이냐는 것이 캐스팅의 절대적 기준이다.
마을 자치 단체장의 정치적 후원조직이나 선거공신 주변 인물이라고 해서 예수를 닮지도 않은 사람을 주연으로 뽑는 일은 절대 없다.
허리 사이즈가 40인치를 넘는 여성에게 마을의 정치적 실세와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성모마리아 역을 맡기는 짓거리도 물론 없다.
따라서 배역 캐스팅을 둘러싸고 마을여론이 분열되고 갈라서는 시비는 애시당초 없다.
옴마가우 마을 기적의 교훈과 배역선정을 염두에두면서 요즘 참여정부 집권그룹의 국정운용 특히 인사쪽의 행보를 보면 개혁이란 구호의 부담과 코드에 매인듯한 인력구성의 제한탓인지 유연성이나 여유가 부족해 보인다.
대체로 일치러내는 솜씨가 껄끄럽고 거칠다.
일부 장관과 방송사 사장 인사 등에서 시비를 불러일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국정원장 임명문제만 해도 토론과 상생·참여의 정치를 말하면서 남의(국회쪽)의견이나 토론결과는 '월권행위'란 말 한마디로 내쳐버린 시비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 하자는 대로 인사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되고 믿어줘야 한다.
문제는 인사권 오기싸움으로 국회와 청와대라는 정치의 두 중심축이 반목하고 싸우면서 추경예산 심의 같은 민생문제가 영향받는다는데 있다.
추경시비는 야당의 오기로 비친다.
명백히 잘못된 대응이지만 노 대통령쪽도 이왕이면 '월권이다'는 볼멘소리보다는 '충고는 고맙지만 내 생각엔 적합한 인물같아 쓰려고 했다.
국회 의견을 안듣겠다는 게 아니라 인사권자의 생각도 존중해준다는 의미에서 일단 나를 믿고 한번 시켜보자'는 수준의 대응을 했더라면 야당이나 국민들에게 좀더 그릇 큰 지도자로 보여지지 않았을까. 솔직히 주요인사마다 이런저런 시빗거리 경력을 지닌 사람만 골라서 뽑아내는듯한 느낌이 드는 점도 사실이다.
어차피 야당이나 언론은 태생적으로 정권견제 세력이고 앞으로 5년 내내 일부 국익사안을 제외하고는 코드가 안맞는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정권주체로서는 그들과의 마찰과 긴장을 최소화시키고 오히려 반대파의 힘을 얻어내고 적으로부터 존경과 칭찬받을 일을 많이 해내는 지혜와 아량과 능력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인사바람은 공조직 곳곳에서 계속 불어닥칠 것이다.
그때마다 이렇게 오기에 찬 소모전을 되풀이 할것인가. 노 정권이 겸허히 유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옴마가우 마을의 배역선발 기준처럼 모든 인사에서 국가조직과 국민의 이익을 '코드'나 재야시절의 인맥, 운동권 집단의 유대감 등 그 어떤 가치나 기준보다 더 우위에 두고 적절성을 판단하는 게 정권유지에 유익하다는 점이다.
내 코드와 맞으면 멋진 사람들이고 내 코드와 안맞거나 반대의견을 내면 보수요 반개혁 꼴통으로 치부해 버리고 공격적으로 버틴다는 비판을 더이상 받아서는 안된다.
모든 분열중에 적전(敵前) 분열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인사문제 하나를 놓고 계층간 정파간의 코드구별 투쟁으로 분열되고 있으면 그게 바로 북핵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는 적전분열이다.
위기와 재난이 닥칠때 기도와 단합된 염원을 모아 기적으로 막아낸 옴마가우 마을 배우뽑기의 지혜와 공정·화합이 새삼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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