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TK정서'-2003년 '호남 소외론'

입력 2003-04-28 11:59:53

1993년과 2003년. 10년 만의 일이다.

대구·경북에서는 TK정서라고 했고 광주·전남에서는 호남소외론이라고 한다.

TK는 30년 집권의 뒤였고 광주·전남은 5년 DJ 집권의 뒤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 핵심부에서 '낡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일부 계층의 불순한 의도'라는 분석을 내놓는 것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TK정서와 호남소외론은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특히 주된 원인이라는 인사문제는 출향 인사들이나 지역 기득권층의 문제일 뿐 일반 주민들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비슷하다.

그러나 TK정서의 경우 섭섭함과 배신감 등이 감정의 문제로 발전, 끝내는 지역 전체를 뒤흔드는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호남소외론도 마찬가지다.

10년 전 TK정서가 걸었던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주목거리다.

◇TK정서와 대구·경북=92년 대선에서 대구·경북은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에게 61.6%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고 승리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하지만 승리의 감격도 잠시. 대구·경북은 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약속이나 한 듯 YS에게 등을 돌렸다.

개혁 드라이브가 시작되면서 전 정권까지 요직에 대거 포진해있던 TK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밀려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선의의 피해자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문민정부 5년 내내 TK는 YS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여당은 대구와 경북에서 치러진 많은 선거에서 봉변을 당했다

특히 대구에서는 전패였다.

이른바 TK정서가 원인이었다.

특히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YS와 완벽한 절연이었다.

반YS는 선거판의 18번이었다.

이런 와중에 지역출신의 구 민정계 인사들도 핵심 권력층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대접받았다

그들은 '적절하게' TK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 역사의 주역이라는 표현도 지역에서 단골메뉴로 사용됐다.

하지만 TK가 주역인 곳은 선거 유세장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대구·경북의 경제적인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부산·경남 편중이나 TK홀대도 문제였지만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는 식의 무대책이 더 큰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리더그룹은 부재했다.

또한 누구도 리더를 자처하고 나서지도 않았다.

삼성자동차가 어떻고, 위천던지가 어떻고, 고속철도가 어떻고 허공을 향해 목소리만 높였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지역의 에너지를 5년 동안 쓸데 없는데 허비만 했다.

그리고 97년 대선에서 몰표를 던지고 다시 5년 동안 정치적으로 철통같은 단결을 보였으나 경제는 전국 최악의 상황이 돼 버린지 오래다.

◇호남소외론=2003년 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이 겨우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94%가 넘게 몰표를 던진 광주·전남이 참여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고 한다.

이른바 '호남소외론'이다.

발단은 인사(人事)였다.

검찰 인사가 그랬고 행정자치부의 간부 인사가 그랬다는 주장이다.

호남지역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을 주도했던 광주·전남의 언론들은 소외, 푸대접의 수준을 넘어 '씨말리기'라는 용어까지 사용했다.

'호남, 호남인이여'라는 한 신문의 칼럼은 "사상 유례없는 호남홀대"라며 "광주의 선택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때문인지 소외나 차별 또는 홀대가 아니라는 청와대와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이 더 먹혀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감정적 반발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번 소문이 돌고 특정 지역민들이 그런 인식을 보편적으로 하게 되면 어떤 설득과 해명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일부의 반발이 증폭된 것"이라고 해명을 한다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10년 전 TK정서가 이슈화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불치의 수준이 돼 버렸다.

감정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고건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의 공개질의에 대해 "특정지역 소외 의도가 아니다"는 답변을 보내고 법무부도 최근 호남소외론에 대해 구체적 수치를 들어 전체 인사구도에서도 편중이나 소외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지시했고 지역간 갈등과 소외에 대한 해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년 전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에는 정권 핵심 인사의 적극적 해명도 없었고 이를 중앙에 전달하려는 지역의 제대로 된 노력도 없었다.

이같은 움직임이 이제 막 고개 들기 시작한 호남소외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두고 볼 일이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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