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맞은 안동생명과학고-70년 이어온 안동 인맥 산실

입력 2003-04-26 11:46:08

경북북부지역 고교 중 최고(最古)의 역사 속에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 했던 안동생명과학고가 지역 주민들의 경축 속에 뜻깊은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이 학교는 지난 1933년 4월 안동공립 농림학교로 개교한 이래 1950년 안동농림고등학교로, 다시 2001년 안동생명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꿔 오늘에 이른 것.

일제치하에서 지역출신 항일 애국지사들이 민족자존 최선의 과제를 청년교육에 두고 1920년대 후반 중등학교 유치를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한 것이 개교의 모태가 됐다.

당시 농·임업 2학과에 정원 250명 규모였으나 북부지역 유일의 갑종학교이자 전국 5개 농림학교 중의 하나로 경북에서는 대구농림과 쌍벽을 이루는 위상을 지녔었다.

이에 걸맞게 일제강점기에는 8∼10회 졸업생이 주축이된 조선회복연구단이 항일운동으로 민족정기를 일깨웠고 해방후 줄곧 산업 근대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학교의 자랑이자 주민들의 자긍심은 인재배출에 있었다.

근세 안동인맥은 이 학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인환 전 농촌진흥청장, 김무연 전 경북지사, 이낙선 전 상공부장관,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 이종훈 전 한전사장, 김명희 전 학술연구회이사장, 김광림 재경부차관 등이 그 면면이다.

이들 중 김인환씨는 통일벼 육종과 보급으로 우리나라 식량자급을 선도해 생명과학고가 명실상부한 실업교육의 산실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농업피폐 여파로 개교이후 최대의 시련기를 맞았다.

1992년에는 신입생이 겨우 50여명에 그쳐 존립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90년대 후반 자영축산과와 자영원예과가 특수목적고 교과로 추가 인가되고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통한 교육 내실화에 힘입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특히 최근 3년간 첨단 실습장비 확충과 자율학교·주5일제 연구학교 지정 등 지식정보화시대에 부응하는 획기적인 체질개선으로 지원자가 넘치면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전교생 절반이상이 각종 국가 기술자격을 취득하고 150여명의 졸업생 중 농과대학 및 관련학과 진학 98명, 농업경영인 5명, 취업 39명이 그 성적표다.

여주환 교장은 "정부의 실업교육 육성책과 각고의 자구노력으로 안동생명과학고는 재도약하고 있다"며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실업교육장의 입지를 다져 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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