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시름없으면 경북도 맥이 빠진다.
대구가 골골 대면 경북도 신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한다.
대구가 슬프면 경북 또한 우울한 분위기에 젖는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 활력이 넘쳐나면 경북은 덩달아 화색이 돈다.
대구에 희망의 노래가 우렁차면 경북 산하에도 약동의 함성이 울리기 마련이다.
그렇듯 대구와 경북은 한 울타리다.
한 몸이고 한 핏줄이다.
일란성 형제요 자매다.
서로 보듬고 격려하는 길동무다.
그런 대구가 지금 빈사 상태다.
가뜩이나 가장 먹고 살기 어려워진 도시라는 판에 지하철 대참사가 덮치면서 대구는 거의 기력을 잃어 버렸고, 그래서 경북 사람들의 근심 또한 깊어졌다.
저러다 대구가 정말 몸져 눕는 것은 아닌지, 영영 헤어나지 못해 3류도시로 침몰하고 마는 것인지, 실로 걱정이 태산이다.
◈3류도시로 침몰하는 것 아닌가
그같은 심정에서 비탄해 마지않는 것은 이 난국 수습을 위해 어느 누구 하나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원시적 대참사가 대구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대구의 가치'가 개망신을 당하고 시민들의 자존심이 무참해졌지만, 사고 두달이 지나도록 들리는 것은 피해자 가족들의 울부짖음 뿐이다.
저 지경을 두고 그 무수한 여론지도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작 이럴 때 사회적 역할이 빛나야 할 지성(知性)은 다 어디에 있는가.
되짚어 보면, 무엇보다 대구시장의 눈물이 밴,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간곡한 육성의 호소가 부족했다.
신새벽에 일어나 가다듬든 아니면 한 밤중에 홀로 깨어 적어 내려가든, 이번 참사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엎드려 사죄하는 호소문을 손수 작성해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시장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엄책하면서, 앞으로 확실한 사태 수습과 대구의 재건을 통해 모든 용서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심경의 그런 육필 편지 같은 거 말이다.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시장은 도의적 무한책임에 가슴을 치며 상처입은 시민에게 파고드는 진심(盡心)의 호소를 토했으면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 하나만 뭇매를 가하고 있는 현실은 온당한 것인가. 지금껏 범시민적 대책기구 하나 만들지 '않는' 또는 '못하는' 대구사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각계 대표는 참사 자체의 수습 뿐 아니라 '만신창이' 대구의 장래를 논의하기 위해 사건이 터진 그날부터 비상한 움직임을 가졌어야 마땅했다.
누구보다 여론주도층이 몸을 일으켜 나섰다면 대구의 슬픔과 아픔은 훨씬 빨리 삭고, 새롭게 다시 일어서자는 시민적 결의가 분출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아쉬움이 큰 이 시점에도 각계 인사들이 어떤 조직적 접촉을 가졌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한 복판 같은 대참변의 도시가 어찌 저리 '태평'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대구의 위기는 곧 리더십의 부재라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백번 맞는 진단이다.
어려울 때 길을 열고 실천적 행동에 앞장서던 대구의 지성은 뿔뿔이 제 목소리만 내고 있고, 각 분야 원로들의 말발이 지금처럼 서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니 구심점이 생길리 없고, 모두들 '제 팔 제 흔들기'로 가는, 지도력의 공백 상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 재건의 역동성을 되찾자
그러한 위기를 '대구의 풍토' 때문으로 귀결짓는 지적이 많다.
누가 앞서면 발목부터 잡고, 눈에 띄면 뒷전에서 씹고, 조금만 수틀려도 끌어내리려는, 그런 저열한 풍토에서는 어떤 리더십의 출현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참사의 수습과정에도 그런 풍토에 대한 피해의식이 떠돌았던 건 아닐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험악한 상황에 괜히 휘말려 들어가면 손해라는 계산이 내남없이 가득했던 건 아닌가. 그렇게 보면 산산이 흩어진 대구 시민사회가 재건(New Daegu Building)의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할 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대구는 흔히 역사적 전통과 풍부한 인적 토대, 태산같은 뚝심이 있기에 충분히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러한 역량을 동력화하려는 시민적 에너지의 폭발이 없는 한은 '천만의 말씀'이다.
솔직히 현재의 대구 상태에서 역사적 전통 운운하는 것은 퇴기(退妓)의 '왕년에 내가…'식 넋두리나 다를 바 없으며, 서로를 인정않는 풍토에서의 인재는 모래알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뚝심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세상은 '바다의 지혜'도 중시하고 있다.
바다는 바람을 따라가며 출렁일 줄 알고 또 숨죽여 멈출 줄도 알며, 바다는 천하의 혼탁을 끌어 품고 세상을 채울 줄 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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