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진달래

입력 2003-04-23 13:43:15

물과 봄은 차이점이 많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지만 봄은 거꾸로 움직인다.

융통성 많은 물은 어느 방향으로든 이동 가능하다.

그러나 봄은 고지식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북쪽으로의 봄꽃 질주가 시작된 것도 거의 두 달. 매화, 산수유에 이어 별 없는 밤에도 주변을 화사하게 밝혀주던 벚꽃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진달래에게 바통을 넘겼다.

'봄꽃팀' 마지막 주자인 진달래는 벚꽃과는 달리 평지에서는 잘 달리지 못한다.

하지만 산에서는 날다시피 한다.

때문에 길 가 야산 둔덕의 소나무 아래서도 자라고 해발 1천m 이상의 고지대에서도 꽃을 피운다.

차를 몰고 달리다 산자락 군데군데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에 만족할 수 없다면 전국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에 올라보자.

산 전체에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진달래꽃 향기에 마음껏 취할 수 있다.

달성군이 주최하는 축제는 지난 주말 끝났지만 이 축제는 꽃이 덜 핀 상태에서 진행됐다.

비슬산 진달래는 이번 주말이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해발 1천84m의 비슬산은 대구시 달성군과 청도군에 산자락을 드리우고 있고, 진달래 군락지는 정상부에 있다.

등산 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 대견사(大見寺) 터를 거쳐 정상(대견봉)에 오르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코스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다면 대견사 터까지는 휴양림 관리사무소 조금 위쪽의 연못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이용하면 된다.

휴양림 입구 주차장에서 관리사무소까지는 산책길. 겨우내 얼음동산이 있었던 자리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조금 올라가니 모난 돌로 이뤄진 산 비탈면〔애추(崖錐)지대〕 2개가 연이어 나온다.

사면 경사가 30도 이상으로 높이도 수직으로 50m 족히 될 듯하다.

돌 위에는 등산객들이 다니면서 작은 돌을 한 두 개씩 얹은 돌탑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조금 더 위 오른쪽에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바위밭(암괴류) 관찰소가 있다.

이곳 바위는 애추지대와는 달리 둥글둥글하다.

물은 보이지 않는데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기념사진 찍는 명소 중의 하나다.

본격적인 산행은 상수원보호구역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등산로는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숲 사이로 나 있고 돌이 계단을 이루다시피 한다.

약한 이슬비가 내리는데도 이따금씩 얼굴을 내미는 진달래는 활짝 피어 있다.

큰 소나무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용을 쓴 때문인지 제법 키가 크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산 초입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바위밭이 등산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다.

대견사 터 바로 밑까지 위로 가면서 넓어지는 암괴류 지대는 길이가 약 2㎞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가지를 꺾어 코에 대면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꽃은 '자기도 좀 봐 달라'며 노란색의 꽃을 달고 있다.

암벽을 병풍 삼아 지어졌던 대견사 터에 오르니 동쪽으로 가창 최정산이, 서쪽으로는 현풍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은 없고 합장하고 있는 스님 형태를 한 부처바위 등 기암괴석이 눈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높이 20여m 절벽 가장자리 자연석 위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바람이 세게 불면 날아가버릴 듯하다.

절이 있던 당시 식수원으로 사용된 샘에는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

30여만평의 진달래 군락지는 대견사 터 뒤쪽 능선에 오르면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여기까지 오르기 전에 보았던 진달래꽃은 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연분홍 꽃들이 밀집해 있다 보니 산에 불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것은 꽃잎을 한껏 벌려 교태를 뽐내고 있고, 어떤 것은 무엇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입을 벌릴 생각도 않는다.

모여 있다고 조상이 다 같지는 않고, 행동도 같이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머물다 곧바로 하산해도 진달래 향기가 뼈 속까지 밸 정도지만 1시간 정도 더 걸으면 산 정상인 대견봉이다.

정상까지는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아무리 다정한 연인사이일지라도 손을 잡고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른 키높이의 진달래는 산행에서 눈이 맞은 남녀가 등산로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고 밀어를 나눠도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빽빽하다.

이런 길은 정상 조금 못미처까지 계속된다.

순탄한 오솔길이 지겹다 싶으면 두발로만 오를 수 없는 암릉이 나오기도 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소나무숲길이 나타난다.

겨울 칼바람을 꿋꿋이 서서 이겨낸 억새도 이제 힘이 다했는지 땅에 바짝 엎드려 있다.

정상 부근의 소나무는 산 아래쪽의 소나무와는 달리 키가 별로 크지 않다.

땅 속에서부터 가지를 벌린 것도 많다.

정상 바로 밑 헬기장 앞엔 제법 큰 분묘가 하나 있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 묘를 만들어야만 했던 절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잠겨 있는 산불감시초소 뒤쪽으로 정상 표지석이 서 있는 바위가 있다.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바로 앞에 있는 바위에 올랐지만 자욱한 운무가 방해가 된다.

바로 밑 암반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뒹굴고 있는 계란껍질도 아쉬움을 더한다.

자연휴양림 주차장~대견사 터~정상(대견봉) 왕복에는 쉬엄쉬엄 걸으면 5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휴양림 입장료는 성인 1천원, 어린이 300원이다.

▶가는길:△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현풍IC에서 빠져 좌회전~유가파출소 삼거리에서 좌회전~자연휴양림 △국도:대구 서부정류장~화원~논공~위천삼거리에서 좌회전(창녕 방향)~현풍~자연휴양림.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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