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씹고 씹는 사회

입력 2003-04-23 12:08:52

명예훼손(slander)이라는 범죄가 있다.

한 개인의 평판이나 존엄성에 해를 주기 위해 허위 또는 거짓 사실을 유포(씹는)하는 행위를 명예훼손이라 한다.

보성초등학교 교장선생의 자살사건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음 직전에 겪은 엄청난 고뇌를 생생히 상상하면서 다시한번 온 몸에 끼치는 소름을 느꼈을 것이다.

스스로의 명예 즉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신을 포기까지 한 것인가?

이 나라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느니, 역시 우리는 할 수 없어라느니, 남의 일이지만 동정을 금치 못하겠다면서 혀나 차는 행위로는 도저히 상황을 바꿀 수 없다.

나 아닌 한국 내 모든 이들을 싸잡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색하여보자. 컵에 물이 반 이상이나 남았지만 곧 없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묘책을 논의하는 것이 살아 남은 자의 도리이며 인간된 의무 아닌가.

문제는 우리는 서로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즉, 남산에 올라가 돌을 던지면 김씨 이씨 박씨가 죽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서로를 모르는 사회의 장점을 생각하게 된다.

단일민족에 한 개의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을 받아온(서구에서는 학교나 교사가 여러개의 검정교과서 중 한 두개를 선택한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사고로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우리는 서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비교우위가 비정상적으로 수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종일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

그리고 비교해보고 뒤틀리면 씹기 시작한다.

차라리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땅, 즉 다문화 다언어 사회라면 남을 씹을 때도 동질감을 느끼거나 사고의 폭이 달라 발 없는 말이 도저히 천리까지 가지 못하리라.

결국, 남을 비난하고 씹어 대면 그들에게 씹힌 사람은 매번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할 수도 없는 약자이기에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슴속 하나가득 안고 살 수밖에 없으며, 그것도 목까지 가득 차면 지하철에 방화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 입심이 센 사람은 자신의 경쟁자 자신의 먹이사슬을 끊으려 하는 사람들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모든 주변사람들에 씹어 놓았기에 천연덕스럽고 의기양양하게 앞서 나아간다.

이렇게 남을 씹는데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국가 생산성저하, 국가 경쟁력저하에 기여한다.

여기 저기 적을 만들면서 안 되는 일을 열심히 노력하여 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파이를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으려는 사람들에게 씹혀 개혁의지를 꺾어 버린다면 '국민 삶의 질 향상 저해죄'로 처단 받을 만 하지 않은가?

이렇게 근거없이 남을 씹는 사람을 거창한 명예훼손죄 아니더라도, 개혁국면의 사회정화차원에서 법조계에서는 그럴싸한 죄명을 붙여주었으면 좋겠다.

'국민 생산에너지 감소죄 (상쇄죄)', '국민 긍정사고 방해죄', '국민 의료비용 증가죄', '국민 행복지수 절하죄'등으로 주홍글씨를 얼굴에 붙여주거나 '공공질서 방해죄'로 딱지를 끊어 경찰력 즉 국민세금 낭비에 대한 벌금이라도 물렸으면 좋겠다.

남을 씹을 수 있는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해소 구술 향유죄', '한평생 반대만 한 죄', '국민 스트레스 증가죄'로 단죄하거나 반대로 '국민불만 기여도'로 상장이라도 주면 어떨까? 이 모든 것 중 가장 훌륭한 방책은 '이제는 실컷 했으니 더 이상 재미가 없어서 못하겠다'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다 같이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똑 바로 쳐다보고 너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어보면 어떤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