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뮤지컬과 정치

입력 2003-04-23 11:47:34

금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뮤지컬 영화 '시카고'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신나는 노래와 화려한 춤의 향연이 이어진다.

각기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뮤지컬 스타 벨마와 스타를 꿈꾸는 록시는 변론에 탁월한 재주를 지닌 속물 변호사 빌리의 도움으로 무죄 석방되고 기구한 인생드라마를 발판으로 마침내 스타덤에 오른다.

국내외 언론에서는 일제히 이 영화가 현란한 쇼 뒤에 감춰진 추악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꼬집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 꺼풀 더 벗겨보자. 쇼 제작자들이 추잡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것이 절대적인 흥행 코드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두 여인, 뮤지컬 무대에 서다'. 이런 문구와 망사스타킹 차림으로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포스터 사진을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그 쇼를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다.

쇼는 관객에게 무조건 웃음과 감동을 줘야하는 특성상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빌리는 신성한 법정마저도 쇼 무대로 만든다.

그는 록시의 변호를 맡으면서 언론플레이로 동정여론을 조성한 다음,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법정에서도 구구한 변론대신 화려한 수사와 역동적인 몸짓으로 배심원들의 감성에 호소하여 무죄평결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면 이성에 호소할 때보다 더 쉽게 설득된다는 점은 심리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이다.

'고독마저도 감미롭다'는 초콜릿 광고나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 되겠어요'라는 보일러 광고는 초콜릿의 성분이나 보일러의 첨단기능을 강조하는 이성적 광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최근 '제가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라는 이라크 출신 소녀의 편지는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며 반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역시 '재미'와 '감동'이라는 감성 코드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이나 노사모를 통한 선거운동은 정치를 놀이판과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 층을 선거에 동참하게 만들었으며, 정몽준씨의 노 후보 지지철회사건은 선거전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며 재미를 배가시켰다.

'노무현의 눈물'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게 했고, 노란 목도리는 그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해서 얻은 효과는 이성적으로 설득한 효과보다 지속성이 약하다.

뮤지컬의 감동은 얼마 못 가 사라져도 상관없지만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믿음은 오래가야 한다.

참여정부의 시작은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감성에 경도되어 있다.

난관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성적으로 결정할 때 국민은 진정한 지지를 보일 것이다.

국민을 흥분시키는 대통령보다는 편안하게 해주는 대통령이 더 미덥기 때문이다.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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