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면 새벽밥 먹지 않아도 될 줄 알았습니다. '콩나물 시루'같은 만원버스에서 '짐짝' 취급 받으면서 하루에 2,3시간 이상을 등.하교를 위해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13개 대학이 밀집한 대학촌 경산에서 만난 많은 통학생들의 말이다. 각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통학용 스쿨버스를 늘려 달라는 요구들이 끊이지 않는다. 영남대가 지난 72년 대명동캠퍼스에서 경산으로 이전할 당시 대구∼경산 영남대(3.4km)간은 왕복 2차선에서 지금은 왕복 8차선으로 확장됐다. 또다른 대학과 공단이 들어서면서 하루 10만여대의 차량이 북새통을 이룬다.
대구∼하양간도 마찬가지. 지난 79년 대구대가 진량으로 옮겨온 뒤 84년 대구가톨릭대학이, 뒤이어 경일대, 경동정보대가 하양으로 옮겨오면서 하루 5만여대가 통행, 체증이 심각하다.
지난 30년 동안에 대구에 비해 땅값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13개 대학들이 경산으로 이전하거나 새로 들어섰다. 도로 교통망 등 사회간접시설은 늘어나는 대학정원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대구에서 경산권 대학으로 통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통학여건은 심각한 수준이다.
경일대 김재석 교수(도시정보공학과)는 "우리나라는 주민중심이지만, 외국은 대학 중심으로 도시계획과 사회간접시설 인프라를 구축한다. 경산 대학촌은 황량한 벌판에 '나홀로 대학'을 세워 놓은 후 거꾸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통수단과 시대변화에 따라 통학 행태도 변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3천여명의 학생들이 토.일요일이면 손에 반찬통과 세탁물 싸들고 열차를 이용했다"고 말하는 윤정원(54) 하양역장. "요즘 하양역 이용객은 하루 평균 1천200∼1천500명으로 이중 대학생이 80% 정도. 지하철 개통과 대중교통수단 발달, 원룸생활로 열차 통학생이 절반 정도 줄었다"고 했다.
포항에서 영남대까지 직행버스(등교시)와 동대구역에서 열차(하교시)로 통학하는 권모(23.독문과 4년)씨. "옛날 큰 오빠 세대 열차 통학때 같은 낭만은 없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어폰 끼고 혼자만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 문자 메시지 보내기에 열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해줬다.
대구 지하철 참사도 대학생들의 통학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사고 이전에만 해도 하루 2∼4만명의 학생들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했었다. 이들이 반야월역이나 안심역에 내리면, 10,15분 간격으로 통학버스들이 학생들을 태우고 각 대학으로 실어날랐다. 통학버스를 운전중인 임웅재(49)기사는 "지하철 참사 전에는 서서 다닐 정도로 학생들이곽 찼으나 사고후 빈 자리가 많다"고 했다.
"지하철 사고후 전세버스를 종전 17대에서 25대로 8대를 증차했다. 이때문에 월 1천만원 추가부담이 발생, 8천여만원이 든다" 는 대구가톨릭대 총무팀 이창훈씨. "지하철 사고전에는 통학버스를 안심.반야월역에 집중 배치했으나, 사고후에는 시내와 거리가 먼 지하철역과 대구 달서,서구 등에 집중 배치했다"고 덧붙였다.
이와는 달리 도로 교통을 이용한 통학은 매일 한바탕 '전쟁'을 치룬다. 대구~경산간, 대구∼하양간 도로는 직장인의 통근과 맞물려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
"7호광장 주변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30분 정도 만원버스에서 시달린다.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나면 녹초가 돼 공부도 잘 안될 정도"라는 대구대 이제덕(25.정보통신학부 3년)씨. 영남대 라광희(21.행정학과 2년)씨는 "남산2동에서 통학버스를 타려면 30분 정도 걸어야만 한다. 이 때문에 1시간 정도 걸리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스쿨버스 증차가 절실하다"고 했다.
통학생들은 "밤 10시30분 마지막 통학버스에 야간부는 물론 주간부 학생들까지 몰려 장사진을 이룬다. 전세 관광버스 기사들은 정원 45명(실제는 60여명을 승차)을 초과하면 과태로를 물어야 해 정원외는 '끊는(태우지 않는)' 바람에 '태워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고속도로를 통하는 전세버스들은 정원 초과로 단속돼 과태료를 물거나 톨게이트에서 내려야 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지역 대학 중 가장 많은 통학버스를 운행중인 대구대. 총무팀 김성수(42)씨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 35분까지 모두 80회 운행 중이다. 매달 통학버스 운행에 1억원 이상이 든다. 학생들의 가장 민감한 문제가 통학문제"라며 "지하철 또는 경전철 운행이 된다면 이 비용을 다른 학생복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밤 10시30분 막차를 놓치면 학교 주변 친구 집에서 자거나 몇명이 돈을 모아 2,3만원의 돈을 내고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는 대구대 조선옥(21.정보공학과 2년)씨. 자가용 등교가 크게 늘면서 교통체증은 물론 대학가 주변 주차난도 심각하다. 영남대 주변과 3개 대학이 몰려 있는 하양읍 시가지는 불법주차로 인근 주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다.
이들 자가용 등교생들 중 일부는 카풀을 하고 있다. 칠곡에서 영남대까지 3년 동안 카풀을 했다는 김경숙(23.한문교육학과 4년)씨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알게 돼 정보교환에 좋다. 그러나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돈문제로 어색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카풀은 그리 많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학촌 경산에서 교통문제가 심각한 곳은 도심 외곽에 위치한 신설 대학들이다. "학생유치를 위해서는 교통편의 제공이 필수다. 시내버스 노선이 1,2대에 불과하고, 그마저 잘 연계되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원룸 기숙사 제공이나 통학버스를 대거 운행할 수 밖에 없다"는 신설대학 관계자의 푸념이다. 다른 전문대 관계자도 "대구,영천, 경주, 포항 등 인근은 물론 심지어 금요일 오후 학생들을 태우고 서울까지 갔다가 일요일 오후 돌아 온다"고 했다.
대학∼경산 통학생과 대학 관계자들은 "노면교통으로는 경산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은 대구 지하철 또는 경전철의 연장,건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의 경북 연장은 대구시와 경북도라는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영남대 윤대식 교수(지역개발학과)는 "선진국에서는 지하철 등 사회간접시설,학군 문제 등이 행정구역별로 추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두 도시가 기능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특별구'를 지정, 이용자의 지역별 분포 등을 고려해 건설비용을 분담하는 등 상호 협력체제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산시 윤영조 시장은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산 경전철 예비 타당성 조사결과, 대구 사월∼영남대∼경산 신천동간(7.6km) 타당성 있다는 결론이 남에 따라 올해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로 8억원을 확보해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윤시장은 "학원도시의 원할한 교통소통과 주민생활 질 향상을 위해 대구 사월∼경산∼자인∼진량∼하양간 23.4km를 연결하는 경전철 건설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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