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핵재처리 시작 않은 듯"

입력 2003-04-19 09:14:59

북 대변인 발언 분석...'엄포용'해석도

미국은 평양당국이 발표한 한글 성명서를 검토한 결과 북한이 영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있다고미국 관리들이 18일 밝혔다.

미국 CNN 방송은 북한이 곧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하게될 것이라는 북한측의 성명은 잘못된 번역의 결과라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당초 북한중앙통신의 영문성명은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의마지막 단계에 와있다"고 했으나 올바른 번역은 "북한이 마지막 단계에서 재처리 작업을 중단했다"는 뜻을 시사한다고 미정부 고위 소식통이 밝혔다고 전했다. 한 관리는 "검토 결과 현지어로 된 중앙방송의 성명은 영어로된 중앙통신의 성명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중앙통신은 영문성명에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우리는 8천개 이상의 폐연료봉을 마지막 단계에서 성공적으로 재처리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그러나 미국측 번역가들은 한글 원본의 정확한 번역은 "우리는 폐연료봉 약 8천개의 재처리작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있다"는 내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이는 북한이 실제로는 재처리를 시작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폐연료봉 재처리 돌입을 시사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은 중국 베이징에서의 북한·미국·중국의 3자 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엄포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이 18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러한 언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음주로 알려진 베이징 3자 회담은 의미없는 것이 되겠지만 사실은 "약삭빠르고 혼란스러우며 종종 무모해보이는" 협상전략의 고전적 사례라고 밝혔다. 북한 전문가인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이것은 협상시 미국이 채택할 강경노선에 대한 선제공격 움직임이며 북한에 무장해제 대가로 지불할 것이 없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 등의 발언에 대한 반응"이라고 풀이했다.

백 연구원은 이와 함께 "북한은 이라크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다거나 이것이 대화에 동의한 이유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를 원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의 언급이 아마도 낡은 핵실험실의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재처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엄포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전문가들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회담을 앞두고 강경한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역시 순전히 전술적인 이유로 단호한 태도를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러나 스스로가 약해보일 때는 언제나 털을 곤두세우는 듯한 반응을 보여온 북한의 그간 행태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군부의 입김이 강해진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의 언급을 단순히 엄포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석가는 "북한의 모든 행동은 미국 정보기관들에 의해 추적되고 있으며 그들이 핵재처리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일반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순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워 아마도 사실은 중간쯤의 어디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8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미 간 회담 개최 사실을 언급하는 가운데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 3월초에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에 중간통보를 했다"며 미국에 사전통보했음을 확인했다.

우리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3월 중 한성렬 유엔주재 차석대사를 통해 코리아소사이어티 커리어 부소장에게 핵 재처리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안다"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핵 재처리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단계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 북한의 핵 재처리와 관련해서는 재처리를 본격적으로 하고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이 사안이 중요한 만큼 유관국가 협조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이 폐연료봉의 재처리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며 "북측의 언급이 플루토늄 추출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재처리 표현은 매우 애매모호하다"며 "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외신종합=여칠회기자 chilho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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