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영업사원 이성애씨

입력 2003-04-19 09:22:55

주부 이성애(44·여)씨는 요즘 유행을 거스르고 있다.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자기 가게를 여는 사람들이 느는 시대지만 자기 가게를 접고 취업으로 돌아선 것.

이씨는 한국화장품 영업사원이다.

지난 해 4월 입사. 그리고 만 일년이 흐른 뒤 지금은 '국장'으로서 영업소 한 곳을 책임지고 있다.

월 평균 수입은 200만원 가량. 40대 중반, 그것도 전문직이 아닌 주부 취업자 수입으로는 꽤 괜찮은 편이다.

회사 내에서도 이씨는 '빨리 올라 선 사람'으로 통한다.

일년 동안 확보한 고정 고객만 70여명 된다.

단골고객 중엔 한번에 화장품을 70만원어치나 사는 사람도 있다.

매출의 약 40%가 판매사원 몫이어서 발품을 판 만큼 수익이 난다.

이씨는 10년 동안 운영하던 화장품 가게를 지난 해 초 접었다.

'잘 나가던 시절'엔 월 매출이 1천800만원에 이르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후 내내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대구 범어시장에서 장사를 했으나 재래시장 상권이 약해지면서 손님이 격감했어요. 그래도 버텼지만 결국 회복이 안되더라구요. 억지로 붙들고 있으려니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아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 취업을 결심했지요". 화장품과 인연이 많아 이씨는 화장품 방문 판매를 택했다.

하지만 처음엔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이씨는 교육받고 첫 영업에 나섰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디로 갈까? 어떻게 상품을 설명하지?… 걱정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

"갈 곳이 없어 친정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어머니가 이웃들을 소개해 주셔서 첫 날 그 곳에서 50만원 어치를 팔았습니다.

이렇게 '첫날'을 지내고 나니 용기가 생깁디다.

그 다음엔 친지들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영업에 나섰고, 차츰 저를 불러주는 고객이 많아졌습니다".

이씨가 일년만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데는 화장품을 잘 알았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10년간 가게를 하면서 알던 고객과 거래처가 있었던데다 시판되는 국내외 화장품에 대해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춰 '손님 포섭'이 쉬웠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최대한 자극하는 것이 세일즈의 기본입니다.

고객 집을 방문해 제품을 설명하다가도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을 재빨리 곁눈질해 지금까지 써 온 제품의 장단점을 읊어줘야 합니다.

저는 손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해시켜서 제품을 사도록 유도합니다".

이씨는 대충 사탕발림 말로 물건을 팔아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몇 개는 팔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의 고객 확장은 어려워진다는 것. 그래서 이씨는 자신의 영업전략을 인내라는 말로 표현했다.

화장품을 팔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료 마사지를 위해 몇 번이라도 방문한다는 것. "사실 힘이 들기도 합니다.

몇 번이나 무료 마사지를 해줬는데 '다음에 사겠다'고 손사래치면 힘이 빠집니다.

그래도 웃으며 인사하고 나오지요. 그러면서 언젠가는 팔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영업 전략은 결국 결실을 맺더라고 했다.

고객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이씨 아래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겠다는 고객까지 나오더라고도 했다.

대구 전역은 물론 경북까지 오가야 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이지만 이씨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역시 수금 문제라고 했다.

"수십만원짜리까지 있으니 돈을 못 받으면 곤란해집니다.

물건 값을 받지 못하면 제가 물어내야 하니까요. 요즘은 휴대용 신용카드 결제기를 들고 다니며 즉석 결제를 유도합니다.

덕분에 수금 고민을 조금 덜었습니다".

이씨는 주부들이 하기엔 화장품 영업 일이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대부분 여성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대화가 일단 쉽고, 근무가 자유로워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 "저는 남편과 아이들 아침 챙겨주고 청소·설거지 다 마친 뒤 10시쯤 출근합니다.

영업사원들은 회사를 출발해 현장에서 활동하다 현장에서 퇴근하기 때문에 자기 시간 조절이 가능합니다.

웬만큼만 해도 100만원 내외는 벌 수 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도 됩니다.

화장품을 쓰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수요가 많은 업종입니다".

이씨는 앞으로 집을 방문하는 영업보다는 사무실 방문 쪽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들의 구매력이 커 영업하기 좋다는 것.

"요즘은 마사지와 메이크업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화장품을 팔려면 손님들에게 쓰는 법을 잘 알려줘야 하거든요". 이씨는 지난 일년 동안 후회보다는 기쁨이 더 많았다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이성애씨의 충고, 이럴 땐 이렇게

♧내가 어떻게 방문판매를? … 친척·친구만 찾아가도 기본은 한다.

♧돈이 될까요? … 출근만 해도 수당이 있다.

100만원은 번다.

♧필수조건은? … 차는 있어야.

♧버려야 할 것은? … '내가 우째 할꼬'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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