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내가 그 안에 있고, 네가 밖에서 면회를 하더니만 오늘은 정반대가 됐구나".
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우리나라 여느 부자와 똑같이 친구처럼, 혹은 선의의 경쟁자처럼 아웅다웅거리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같은 길을 걸으면서 최소한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풍지박산이 난 삶을 산 부자가 있다.
아버지는 안재구(71)씨. 수학자로 경북대, 숙명여대, 동국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고 미분기하학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았지만 1979년 남민전사건에서 사형선고, 1994년 구국전위사건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9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
아들은 안영민(36)씨. 경북대 총학생회장, 대구.경북지역대학 총학생회장 연합회장을 맡았으며 오랜기간 수배생활끝에 1994년 아버지와 함께 구국전위사건으로 구속된 뒤 1996년 석방됐다.
지금은 말지 취재기자를 거쳐 민족21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부자는 지나간 세월을 그린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 펴냄, 9천500원)를 펴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군사독재, 문민시대를 거친 우리나라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며, 한 개인이 신념에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보낸 아버지와 그 길을 묵묵히 따라 간 아들을 묶고 있는 '부자간의 신뢰'와 '신념에 대한 신뢰'는 부러움 마저 느끼게 한다.
아들은 자신이 겪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그 과거에서 더 먼 과거로 올라가 아버지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그 속에는 놀랄 만큼의 '동질성'이 숨어있다.
수배중의 도피생활, 체포와 재판, 그리고 수감생활,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애정까지, 이들간에는 20~30년간의 시차괴리가 있는데도 판에 박힌 듯한 유사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고난의 길을 택해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아버지는 말없이 그 길을 걸었고, 아들도 지금 묵묵히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버지라는 큰 강이 아들이라는 작은 시냇물을 이끌고 바다에 이르는 풍경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역사의 바다에 기꺼이 몸을 던진 그이들의 뜨겁고 고단한 삶이 가슴에 그렁그렁 통증을 남긴다'(시인 안도현)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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