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匠人 정신

입력 2003-04-16 11:58:37

한 가지 일에만 깊이 빠져들어 그 일에 관한 한 정통성을 갖고 명품을 만들어내는 정신이 '장인(匠人) 정신'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들은 '장인 정신'으로 일하는 전문가들을 극진히 대우한다.

프랑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장인이 되면 박사학위를 갖지 않아도 최상의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

'학벌 사회'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능력 사회'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장인 정신'과 이를 받드는 풍토가 오늘의 유럽 사회의 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에서도 국수 가게를 꾸려나가더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오랜 세월 대를 잇는 집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자신이 갈고 닦은 전문 분야에서 '프로 근성'을 가지고 인생을 거는 정신이 부족하다.

열심히 일을 해 살만 하면 그보다 남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려 하며, 거드름을 피우게 마련이다.

한 일본 학자는 우리의 '헝그리 정신'을 꼬집은 바 있다.

▲93세의 할아버지가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화제를 낳고 있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오늘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이 대회의 충남대회에 나선 시계수리 부문의 이원삼 옹이 그 주인공이다.

경력이 무려 75년이나 되는 그는 6.25 한국전쟁이 끝난 뒤 문을 연 서울 자유시장 점포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박사님'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일거리가 거의 없지만 망가진 시계를 고치는 재미로 살아가는 그는 '천상 장인'이다.

▲그는 생활도 시계처럼 정확하다고 한다.

경기 성남의 집을 오전 9시에 나와 10시30분에 가게의 문을 열고 오후 6시까지 꼬박 시계를 들여다본다는 게 그의 일상이라 한다.

고치기 어려운 시계를 도맡아 고치는 그의 명성은 이미 전국에 퍼져 있으며, 그 때문에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업계 후배들이 '기능인의 자존심을 보여달라'는 성화에 떠밀려 출전하게 됐다지만, '장인의 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느림의 철학'은 우리 사회에 귀감이 돼야 하리라.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온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로 일컬어지는 지금은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며,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그 '빠름'에도 적절한 '느림'이 요구된다.

그것이 또 다른 '큰 힘'이 될 수 있으며, 장인 정신은 바로 그 '느림의 철학'에서 꽃이 피어오르므로….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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