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를 불이 한 곳에서 이렇게 자주 나는데도 경찰은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사람이 죽어야 나설 모양입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14일 대구 만평시장 연쇄 화재 현장에서 만난 한 40대 상인은 방화의 개연성이 짙은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는데도 경찰은 팔짱만 끼고 있다고 분개했다.
처음 시장 안의 한 생선가게 앞 스티로폼 상자에서 불이 났을 때만 해도 그는 담뱃불에 의한 실화 사건쯤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1년여 사이에 10건 넘게 화재가 이어진 뒤에는 한밤에도 두려움에 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의 분노는 경찰의 무성의로 향해 있었다.
의문의 화재 사건이 잇따라도 그간 경찰은 방화 개연성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것. "불이 나면 그 다음날부터 10여일쯤 순찰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불이 주로 나는 새벽녘에는 순찰 경찰관을 보기 힘듭니다.
더욱이 그런 형식적인 순찰마저 곧 흐지부지 되지요".
14일 불이 난 슈퍼마켓 주인 송병호(64)씨도 "일부러 불을 낸 것이 뻔해 보이는데 경찰은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도 가게 안의 방에서 잠자다 이웃이 불 났다며 깨워 그나마 참변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인근의 다른 상인은 "20년 넘은 재래시장이라 한 곳에서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지만 보험회사조차 화재보험 가입을 기피한다"고 불안해 했다.
주민들의 불만은 취재 과정에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관할 비산7동 파출소는 이날 3곳에서 불이 났는데도 1곳에서만 불이 났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작년 하반기 치안 평가에서 대구시내 최우수 파출소로 표창받은 이 파출소 경찰관은 기자가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잇따랐다"는 주민들의 말을 전하는데도 "주민들이 (순찰 강화를 노려)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고 말을 잘랐다.
또 파출소의 축소 보고를 받은 서부경찰서 역시 단순 화재 쯤으로 덮어두려 했다.
소방서는 "방화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짙다"는 의견을 보였지만 경찰은 "그렇게 답답하면 자기네들이 수사하지…"라고 일축했다.
최병고 사회2부 cbg@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