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의 초등학교 교장 자살 사건 이후 교육계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학교 관리자들을 비롯한 교육계 보수층들은 전교조의 일방적인 공격이 죽음을 불렀다며 비난을 멈추지 않는 반면 전교조측은 정확한 원인 조사가 선결돼야 한다며 버티고 있다.
교육계가 분열, 대립하는 와중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신뢰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교육계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보고 풀어가야 할 지 김연철 전 대구시 교육감을 경북 선산 무을면 자택에서 만나 들어봤다.
2001년 7월 교육감에서 퇴임한 지 약 2년. 고향인 선산으로 내려가 모친(99)을 모시고 있는 그는 요즘 집 안마당에 재실을 새로 짓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인부들과 함께 땀을 흘리느라 얼굴은 그을렸지만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그래도 한달에 열흘 이상은 대구를 오가기 때문인지 교육계의 현실에 대한 판단과 걱정은 현직에 있을 때 못지 않았다.
김 전 교육감은 "후회없이 교육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야인이 되고 보니 아쉬운 게 많다"며 "지금이라도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니지만 평생을 교단에 몸바쳐온 교장이 생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현재의 구조가 계속돼서는 교육이 안 된다"며 "학교 관리자든 교사든 그저 편하려고만 들어서는 결코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향에 정착한 소감은.
▲우선 가까이서 노모를 모실 수 있어 다행이다.
돌아보니 참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고향에 돌아와서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지만 뭘 하든 바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실을 새로 짓는 것도 직접 관리하기 위해서다.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아직 교육계에 남아있는 것 같다.
교육관련 뉴스나 방송프로그램, 신문은 빼놓지 않고 본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교육계라는 조직사회의 질서가 무너진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학교에는 관리자인 교장, 교감이 있고 교사들은 학교 운영을 위해 관리자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이 질서가 깨진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교육 경력 20, 30년인 사람이 자기 뜻을 펴 보려 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교조는 올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교사의 권익을 옹호하는데 너무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중도적인 입장의 교사들까지 대세에 휩쓸려 따라가고 있다.
-관리자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지금의 현실에 이른 데는 교장, 교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소신이 부족하고 철학이나 주관, 주장도 분명하지 못하다.
관리직이 되려면 세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도덕성, 교육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겠다는 전문성, 시대와 세상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나는 고교 교장으로 있을 때 아침 7시 넘어 출근한 적이 없다.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남도 움직일 수 없다.
전교조 교사들도 진정 존경받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일, 즉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계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데.
▲맞는 얘기다.
교사들 사이에, 교사와 관리자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면 학생들이 먼저 알고 학교에 등을 돌린다.
학부모들이 이런 학교를 믿어줄 리 없다.
그러니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같은 교사가 가르치는 학급 내에서도 차이가 심한데, 다른 학급 다른 학교 학생들이 섞여 차이가 더한 학원에서 한두 명의 강사가 이를 풀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교육 전체의 질 저하로 연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교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대부분의 경우 학원 강사는 학교 교사보다 질적으로 떨어진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학원에 대거 진출하는 현실 아닌가. 문제는 학원 강사들이 생존을 걸고 열심히 하는데, 교사들의 경우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월급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출발점에서 아무리 낫다고 해도 스스로 갈고 닦지 않는다면 자기 역량의 200%를 끌어내는 학원 강사에게 추월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업무가 많고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교사들도 경쟁 시스템 도입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자부심을 갖는 만큼 실력도 갖춰야 한다.
-새 정부, 특히 교육부에 조언한다면.
▲우선 교육부 장관이 소신을 갖고 철학을 펼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줘야 한다고 본다.
윤덕홍 부총리는 개혁 의지가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초·중등 교육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가급적 현장의 소리에 귀를 열고 만나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교육부 스스로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문제다.
빨리 시·도 교육청과 학교로 권한을 대폭 넘겨야 한다.
교육부가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하는데 학생과 학부모가 믿어주겠는가. 교육청과 학교도 요구할 건 분명히 하고, 소신껏 일을 추진하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김재경·김수용기자
◇김연철 전 교육감 프로필
-1932년 선산 송삼리 생
-57년 경북대 사대 수학과 졸업
-57~76년 대구오성고, 영신고, 안동농림고, 봉화 소천중, 울진 매화중
-76~83년 안동교육청, 경북도교위 중등 장학사
-83~85년 대구시교위 중등 장학관
-85~88년 대구시교위 중등교육과장
-88~89년 대구여고 교장
-89~91년 대구시교위 학무국장
-91~93년 대구시 부교육감
-93. 7~97. 7 제4대 대구시 교육감
-97. 7~2001. 7 제5대 대구시 교육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